[기로의 동물원] ① 65년 전 사라진 '인간전시'…'동물전시'는 괜찮나
5년간 안전사고 600건…폐사한 멸종위기 동물도 1천800여마리
'동물원 폐쇄론', '생물다양성 보전 위한 역할론' 공존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홍준석 기자 = 인간이 인간을 전시하고 관람한 역사도 있다.
5일 한국서양사학회 학회지 서양사론에 실린 '식민주의와 인간 동물원' 논문을 보면 사육사만 300명이었다는 멕시코 아즈텍문명의 몬테주마 동물원에는 동물뿐 아니라 '비정상적' 사람도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전시 인간'은 사라 바트만이다.
남아프리카 코이코이족 출신 바트만은 1810년 영국인 의사 윌리엄 던롭에 의해 영국에 와서 5년간 '괴물쇼'에 동원됐다.
마지막 '인간동물원'은 벨기에에 불과 65년 전인 1958년까지 남아있었다.
지금도 인간을 대상화하는 일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인간을 '동물원 동물처럼 가두고 전시한다'라는 일은 없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동물을 가둬놓고 전시하는 동물원은 여전히 남아있고 인기도 많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동물원은 총 114곳이다.
동물원이 '보유'한 동물은 4만8천911마리이다.
4년 전인 2018년 12월(동물원 102곳·보유 동물 4만5천539마리)과 비교해 동물원도, 동물원 보유 동물도 모두 늘었다.
반려동물이란 말이 '애완동물'을 빠르게 대체한 것처럼 동물을 인간의 소유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빠르게 확산해 이제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3월 25~28일 만 18세 이상 남녀 1천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동물에게도 생명권 등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라는 데 응답자 79%가 동의했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인간에 의해 동물원에 가둬지고 전시된 동물을 보러 가는 데 거리낌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 등에 따르면 세계 동물원과 수족관 관람객은 연평균 7억명이 넘는다. 지난해(1~10월) 서울대공원 동물원·식물원 관람객은 월평균 11만8천800여명에 달했다.
2018년 환경부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서는 '최근 1년 동안 동물원 방문 경험이 있다'라는 응답자가 23.8%였다. 연간 방문 횟수는 2.1회였다.
지난 3월 어린이대공원에서 그랜트얼룩말 세로가 탈출한 일은 야생을 질주해야 할 동물이 동물원에 갇혀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상기했다.
'부모를 잃은 뒤 이상행동을 보였다'라는 세로의 사연이 전해지며 탈출을 바라보는 사람들 시선은 '놀라움'에서 '안타까움'으로 바뀌었지만 그뿐이었다.
'도심 주택가를 달리는 얼룩말'이라는 이색풍경을 선사한 세로는 스타로 떠올랐고, 동물원은 관람객이 9% 정도 반짝 늘어나는 반사이익을 누렸고, 관람객들은 세로가 예정대로 '반려 얼룩말'을 만나 동물원에서 행복하길 바라며 즐거워했다.
세로가 얻은 것이라고는 사실상 '동물원 재조성사업 조기 추진 검토'와 반려 얼룩말을 일찍 데려오기로 했다는 소식뿐이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지난달 13일 점검에 나선 서울시의원들에게 "2030년부터 진행하기로 한 재조성사업 조기 추진을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계획에는 맹수사와 초식사 등 '인간의 인식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을 사바나와 열대우림 등 '생물 중심 기후학적 공간'으로 개편하는 방침이 담겼다.
동물원 사건·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2005년 4월 20일에는 어린이대공원에서 코끼리 공연단이 관리하던 코끼리 6마리가 탈출하는 일이 있었다. 2010년에는 서울대공원에서 말레이 곰 '꼬마'가 탈출해 인근 청계산을 활보하다가 아흐레 만에 잡히기도 했다.
서울대공원에서는 2013년 11월 시베리아 호랑이가 우리에서 탈출해 사육사를 습격한 적도 있다. 2018년 9월에는 대전오월드에서 암컷 퓨마 '뽀롱이'가 직원이 실수로 잠금장치를 잠그지 않은 틈을 타 탈출했다가 결국 사살됐다.
작년 6월에는 제주 동물원에서 '산미치광이'로도 불리는 포유류 호저 2마리가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탈출한 호저 중 1마리는 결국 아사해 사체로 발견됐다. 올해 1월에는 강원 강릉시 한 동물농장에서 새끼 사자 2마리가 탈출했다가 다시 포획되는 일이 있었다.
동물원에서 탈출 사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서울대공원에서는 인수공통전염병인 우결핵이 발생해 멸종위기 동물을 포함해 50마리가 안락사됐거나 폐사했다. 올해 1월에는 경북 구미시 실내동물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동물 100여마리가 떼죽임당하기도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동물원 안전사고는 총 600건 발생했다. 동물이 탈출하거나 다친 사고는 61건이고 직원과 관람객 안전사고는 각각 151건과 388건이었다.
사고는 대체로 열악한 환경에서 비롯됐다.
작년 12월 환경부 '동물원 보유 동물 서식 환경 현황조사' 결과를 보면 동물원 86개 가운데 보유 포유류 75% 이상에 환경부가 정한 기준을 충족할 만큼 공간을 허가한 동물원은 44.7%(34곳)에 그쳤다. '설치 기준을 충족한 펜스가 75% 이상인' 동물원은 23.7%(18곳)로 더 적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7월까지 동물원 109곳에서 국제적 멸종위기 동물 1천854마리가 폐사했는데 77%(1천432마리)가 '자연사'가 아니었다. 다수가 질병 또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문제가 많다고 모든 동물원을 당장 폐쇄할 수는 없다.
동물원이 고향이 돼버린 동물들을 한순간에 야생으로 돌려보낼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동물원이 동물을 연구하고, 동물에 대해 교육하고, 인간과 동물이 만나게 해주는 몇 안 되는 공간이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 보전에 관련 기술과 경험을 갖춘 동물원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동물원 허가제' 도입에 맞춘 시행령·시행규칙 마련 연구를 진행한 한국환경법학회는 "동물원 정의에 '생물다양성 보전'을 추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오는 12월 14일 동물 생태습성을 고려한 시설과 복지에 관한 기준을 충족한 동물원만 운영이 가능하도록 동물원 허가제가 시행된다. 현재 구체적인 허가 기준이 마련되는 중으로 '괜찮은 동물원'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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