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오너일가, 3000억 규모 지분 매각… "상속세 재원 마련"

지용준 기자 2023. 5. 5.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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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오너일가가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분 매각을 단행한다. /사진=한미약품
한미약품의 오너일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사모펀드(PEF)에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매각한다. 지분 매각 규모만 약 3100억원에 이른다.

그동안 한미약품 오너일가는 환매조건부계약과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상속세를 마련해왔다. 최근 금리 인상과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상속 당시보다 밑돌면서 결국 상속받은 주식을 매각해 상속세 자금 마련에 나선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3일 주식 등 대량 보유 상황보고서를 통해 최대주주 및 특별관계인의 지분변동 예정 사항에 대해 공시했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은 PEF인 라데팡스파트너스(라데팡스)와 코러스유한회사(코러스)에 3132억원 규모의 한미사이언스 주식 824만2117주(11.8%)를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주당 매각가는 3만8000원으로 지난 3일 한미사이언스 종가(4만500원)보다 낮은 금액이다.

한미약품 오너일가와 라데팡스·코러스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거래는 오는 30일 종료된다. 이번 딜이 종료되면 송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11.7%에서 2.6%로 줄어들며 임주현 사장은 10.2%에서 7.5%로 감소한다.

라데팡스 관계자는 "임주현 사장은 송 회장에게 대여한 주식을 정리하기 위해 최소한의 금액으로 거래에 참여했다"며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일부 투자자산의 현금화를 통해, 차남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은 보유 주식 등을 통해 잔여 상속세를 납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송 회장과 공동보유약정을 통해 의결권과 철학을 공유한다"며 "사업과 연구개발(R&D)은 최대주주가 집중하고 지배구조 재편과 재무전략에 대해선 PEF가 의견을 제시하도록 역할이 분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왼쪽)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사진=한미약품


상속세 5400억원, 재원 마련 위해 담보대출에 지분 매각까지


한미약품 오너일가에게는 막대한 상속세가 부과된 상태다. 이들은 2020년 고 임성기 회장의 타계 이후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다. 송 회장, 임종윤 사장, 임주현 사장, 임종훈 사장은 1.5:1:1:1의 법정 상속 비율로 고 임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34.29%를 상속받았다. 약 54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상속세가 부여됐고 연부연납제도를 통해 5년 동안 상속세를 분할납부하기로 했다.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한미약품 오너일가는 상속세 재원 마련에 애를 먹었다. 일례로 상속 받기 전 경제활동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송 회장은 보유 주식의 담보대출 비율이 50%를 넘겼다. 보유 지분으로 급전을 빌리는 경우도 잦았다.

한미약품 오너일가는 지난해부터 에쿼티스퍼스트홀딩스코리아와 환매조건부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환매조건부 주식매매 계약은 주식을 매각한 뒤 같은 가격으로 기한 만료 시 주식을 되사올 수 있다는 조건을 명시한 계약을 가리킨다. 이들이 체결한 환매조건부 주식 규모는 401만3240주에 달한다.


상속세 이대로 괜찮을까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50%)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최대주주의 주식에 대해 상속세율을 추가 부과하는 '최대주주 할증평가 제도'로 인해 최대 상속세율은 60%까지 치솟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직계비속에 대한 기업 승계 시 한국의 실효세율이 58%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미국, 독일, 영국의 주요 세율은 각각 40%, 30%, 20%다.

고 이건희 회장의 타계로 약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부담하던 삼성 오너일가는 지분을 팔아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지난해 3월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블록딜(시간외 대량 매매)을 통해 매각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보유한 삼성SDS 지분 3.9%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상속세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정치권에서 일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분당구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송기헌 의원(더불어민주당·강원 원주을),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유동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인천 계양구갑)은 지난 4월21일 상속세 유산취득세 방식 긍정적 검토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서 한국이 상속재산 가액 전체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유산세'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유산세는 상속받은 재산 총액에 상속세를 매기는 방식을 가리킨다. 상속인이 각자 물려받는 재산 가액 기준으로 바꾸는 유산취득세로 개편하자는 취지다.

김 의원은 "상속세는 적당한 세수를 통해 부의 이전을 최대한 막고 재분배 활성화와 사회 환원을 이끌어낸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납세자의 과도한 부담, 평생 기업 활동이나 개인 소득 활동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한 번 더 걷는 세금이라는 여러 문제점도 있어 어느 정도의 선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도진 중앙대학교 경영경제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상속세는 오너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한테도 논란이 될 수 있는 체계다"며 "과거와 달리 소득세로 인한 세수가 많아진 현재 상속세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용준 기자 jyj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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