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막으려 일본과 손잡으라고?”…밀착하는 한일, 군사동맹 가능할까 [박수찬의 軍]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지난 1년간 한국의 안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이다.
김 위원장이 거듭되는 핵·미사일 도발로 한국을 밀어냈다면, 기시다 총리는 북한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을 앞세워 한국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오는 7일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한 직후에는 한·일 안보협력이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한·일 ‘밀착’에 워싱턴 인사들은 호평 일색이다. 동아시아 안보환경이 위협적으로 변하고 있으므로, 동맹국들이 상호 결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맹국 간 협력을 강조하는 ‘통합억제’ 개념을 추구하는 미국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일 안보협력 강화가 사실상 한·미·일 3국 군사동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동맹국들이 서로 결속해 미국의 국제정치 행보에 동참하는 것.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강조하는 가치외교의 핵심이다.
가치외교의 ‘약한 고리’는 한·일 관계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한·일의 공통된 군사적 이슈지만,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는 양국 관계는 직접적인 군사협력을 어렵게 했다. 문재인정부 시절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효력 중단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 위협을 강조하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북한 위협이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당시와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북한과 일본 중 누가 더 한국 안보에 위협인지 생각해보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국한됐던 북한 미사일 위협은 일본, 괌, 미 본토를 사정권에 넣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6차례 핵실험으로 핵폭탄 제작 기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대북 군사작전 범위가 일본 열도, 오키나와, 괌, 하와이 등까지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한·미 연합방위태세만으로는 북한 위협을 완전히 차단하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일본을 단일 작전구역으로 설정, 대북 작전을 수행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동아시아 지역을 단일 전구로 바라보는 시각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시절에도 제기됐던 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상호운용성 확보가 필요하다. 최근 미국과 동맹국이 서로의 무기·장비·탄약을 자주 사용하고 공급망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상호호환성 개념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한·일 간에는 상호호환성을 적용할만한 제도적 장치나 기술적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아시아판 군사장비 표준화 체계도 구성되지 않았다.
지난 2014년 한·미·일이 정보공유약정(TISA)을 체결했을 때, 미국 전문가들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반도 유사시 증원전력 전개를 담당하는 유엔군사령부와 유엔사 후방지휘소도 한·미·일 협력을 촉진하는 요소다.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영국 등 전력제공국이 파견한 병력과 장비를 일본에 모은 뒤 한국으로 전개한다. 이 과정을 돕고자 일본에 유엔사 후방지휘소가 있다. 일본은 유엔 결의에 근거해 한국에 파병한 국가의 군대를 수용하고 지원하며 유엔사에 협조한다.
이같은 협조 체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한·미·일이 군수지원 및 정보공유 분야에서 상호 협력을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과 유럽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수지원, 정보제공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지리적 이점을 지닌 한국이 운용하는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와 정찰기, 지상 감청시설 등이 수집해 분석한 결과는 첨단 정찰자산을 갖춘 미국보다 더 정확도가 높은 경우도 있다.
반면 미사일이 동해에 낙탄하는 상황에선 일본의 감시망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수집한 정보를 종합하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부터 낙탄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 대한 ‘퍼즐 맞추기’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완성된 정보를 축적한 뒤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분석하면, 북한 미사일의 특성과 기술 수준에 대한 자료를 민들 수 있다. 이는 한국군의 미사일 방어 및 킬 체인 구축, 북한 미사일 탐지 단계에서 종류와 특성의 신속한 파악 등에 큰 도움이 된다.
결국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필요한 명분과 동력, 결속력을 제공하는 셈이다. 북한이 도발 강도를 높일수록 3국간 협력과 결속도 강해지는 모양새다.
문제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잠수함전, 미사일방어, 대해적작전, 해상차단 등 한·일, 한·미·일이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정보공유 수준을 높이거나 사이버 위협 공동대응을 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아간 수준에 해당하는 확장억제 협의나 군사동맹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한·미가 워싱턴 선언을 통해 만든 핵 협의그룹(NCG)이 한·미·일 협의체로 확장될 가능성은 낮다. NCG는 한·미 양자 협의체다.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안정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일본 내에서 여전히 핵에 대한 공포감이 남아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확장억제는 어떨까. 일본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도입을 비롯한 반격능력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불안감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회의적인 견해도 있다.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확대하는 한편 한국과도 NCG 창설과 전략핵잠수함(SSBN) 한국 전개, 한국군 재래식 전력과 미군 전략자산 통합 등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하는 등 동맹의 결속력을 높이면서 한·일간 군사협력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일 확장억제 개념이 성립되려면, 한국과 일본이 군사작전과 전력 구조 등을 공유해야 한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간 관계나 한·미 동맹에 해당하는 정도의 군사적 신뢰 관계가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있지만, 한·미·일 확장억제 협의나 군사동맹이 가능한 수준까지 양국간 안보협력이 이뤄지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핵 관련 부분을 제외한 사이버, 우주, 해양안보, 정보공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등에 대해서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한층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커지고 있고, 중국이 핵전력을 증강하는 국면에서 일본이 한·미·일 안보협력에 주저할 이유는 없는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한·미·일 안보협력 등 동맹국간 결속을 강조했던 만큼 북한 핵 고도화와 위협 점증에 대응한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 강화를 독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에 맞춰 한국 정부의 군의 향후 움직임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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