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서러움 있었다"…어린이날 앞두고 떠난 '평택 모자'

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2023. 5. 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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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많다가 사건 당일 저녁 연락 두절
"최근 국적 관련 심리적 압박 받아 왔다"
가족·친지 모두 중국인 '다문화가정'
유서에는 "미안하다…아들 데리고 간다"
현재까지 별다른 타살 혐의점 등 없어
슬픔 잠긴 이웃들 "밝은 모습 눈에 선해"
"김밥·오뎅 즐겨…친구 아이스크림도 챙겨"
일각에선 '극한 아동학대' 경고 메시지도
지난 2일 경기도 평택시의 한 아파트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엄마 A씨와 아들 B군의 빈소가 차려진 평택 내 한 장례식장. 박창주 기자

"억울한 부분이 있어요. 댓글들은 무서워서 못 보겠습니다. 다문화가정으로서 아이 엄마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왔었죠."

유족 "국적 달라 심리적 압박 받아와"

4일 오후 1시쯤 경기 평택시의 한 장례식장에는 이틀 전 인근 아파트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엄마 A(중국 국적의 조선족)씨와 초등학교 새내기 아들 B(7)군의 빈소가 차려졌다. 어린이날인 5일 입관해 이튿날 발인 예정이다.

2층 복도 끝에 마련된 빈소에서는 유가족들의 오열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유족인 C씨는 조문객 맞을 준비를 위해 분주히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연신 손에 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기자가 다가서자 그는 "답답하다"며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부터 펼쳐 보였다. 사건 전날까지도 여러 번 통화를 해오다 당일 오후부터 계속해서 '부재중'이었던 A씨와의 통화기록이었다.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다.

A씨가 극단 선택을 한 배경과 관련해 "감춰진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C씨는 사망한 A씨가 최근 국적과 관련해 부쩍 심리적 압박을 받아 왔다고 털어놨다.

C씨는 "우리 가족 모두가 중국인들로 다문화가정이다"라며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심리적 압박을 심하게 받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사건 이후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유족들이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애초 A씨도 중국인 신분으로서 제3자 또는 어떤 사안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어 C씨는 "평소 우울증을 앓았으면 가족들이 알았을 텐데 그런 건 없었던 것 같다"며 "얼마 전 아파트 분양당첨이 돼서 기대도 컸을 텐데 이렇게 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자세한 내용을 다 공개하면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들도 있다"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에 상황을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11시 반쯤 평택 고덕면 한 아파트에서 A씨와 B군이 숨졌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늦은 밤 퇴근한 A씨 남편이 현장을 발견해 신고한 것.

자택 안에서는 A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아들을 데리고 먼저 간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아들을 살해한 데 이어 스스로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통해 부검을 진행했다.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 등은 없는 상태다.

A씨 가족은 지자체나 다문화센터 등에서 지원하는 복지 대상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외동아들 '애지중지'…"친구들 아이스크림까지 챙겨"

A씨가 거주하던 평택의 한 아파트 전경. 박창주 기자

어린이날을 사흘 앞두고 벌어진 비극에 이웃들도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며 슬픔에 잠겼다. A씨가 거주해 온 지역은 그의 가족처럼 주변 공장과 공사현장 등지에서 일하는 상당수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평소 하나뿐인 자녀인 B군을 애지중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두 모자가 자주 이용하던 인근 상가의 한 관계자는 A씨가 B군의 등하굣길을 늘 함께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또 상가 내 학원에 데리고 오고가며 간식을 챙겨 먹이는가 하면, 놀이터에서 어울리는 아들 친구들에게 주려고 아이스크림도 여러 개씩 사 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부모가 중국인들이라 아이 입학하기 전부터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려고 학원을 보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외동 아들이라 그런지 엄마가 아들을 항상 끼고 다니면서 무척 아꼈고, 말쑤는 많지 않아도 늘 밝고 착해 보였다"고 말했다.

또 "평범했던 가정에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며 "몇 명 안 된다는 아들 친구들도 줘야 한다면서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 갔는데, 특히 김밥이랑 오뎅을 즐겨 먹었던 아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돌이켰다.

A씨와 같은 단지에 사는 한 이웃은 "단지에서 오가면서 서로 인사 정도하는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며 "젊은 나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선택까지 하게 된 것인지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동반 아닌 '극단적 학대'…대책 필요" 지적도

B군이 다니던 초등학교 건물이 아파트 펜스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모습. 박창주 기자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어린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른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의 재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평택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에도 서울 노원구에서는 아내를 살해한 30대 남성이 한살배기 자녀와 함께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보건복지부의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 2013년 24건에서 해마다 꾸준히 20건 안팎을 유지해오다 2019년 3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조사에 따른 수치로, 아직 공식 통계조차 없어 최근 2년여간의 건수는 정확히 확인도 안 되는 실정이다.

이 같은 자녀 살해는 신체적 저항이 어려운 아동을 대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극단적 형태'의 학대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아동이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은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가 먼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동반자살로 불려서는 결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를 증진하고, 아동은 물론 우울증상을 보이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처지의 학부모 등을 밀착 관리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은 "자녀를 자율의사를 지닌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인식하거나, 홀로 남겨질 것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모진 생각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자녀를 도구화하는 사고방식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행여 자신은 극단적 상황에 몰리더라도 아동에 대해서는 국내 보호체계가 선진화 됐기 때문에 얼마든지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줘야 한다"며 "국가나 관련 단체들도 이런 사건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사회 돌봄 제도에 대해 적극 캠페인하고 부모가 심리적 위험 상태에 놓였을 경우 이를 신속히 인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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