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시간’ 尹...’지지율 상승’ 기시다, 남은 물컵 채울까
12년 만 셔틀 외교 복원은 이미 성과
일본내 지지율 상승으로 부담 던 기시다
7일 회담서 ‘성의 있는 호응’ 수위에 ‘주목’
전문가들 ”김대중-오부치 선언문 다시 읽는 것도 방법”
여야, 정상회담 별개로 ‘도 넘는’ 일본 행동엔 ‘경고’
윤석열 대통령이 내민 손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잡았다. 지난 3월 윤 대통령의 실무 방일 정상회담에 이어 오는 7일 기시다 총리가 한국을 실무 방문으로 찾아 한일 정상회담을 한다.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한은 지난 2011년 10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방한 후 12년 만이다.
정부는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열리지 않았던 한일 셔틀 외교가 재개되는 것 자체가 한일 관계의 회복을 상징한다고 보고 있다. 기시다의 일본 내 지지율이 3월 정상회담 후 상승하는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박진 외교부 장관이 말했던 ‘반쯤 찬 물컵의 물(성의 있는 호응)’을 기시다 총리가 이번 방한에서 얼마나 채울지 주목된다.
◇ 먼저 손 내민 尹대통령...기시다 이른 답방으로 셔틀 외교 본격 복원
5일 대통령실과 한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지난 3월 일제의 강제동원(징용) 문제에 대한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먼저 밝혔다. 지지율 하락을 감수한 결단으로 과거보다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의지가 강력히 반영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3월 16일 윤 대통령은 일본을 실무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했고 기시다 총리의 답방을 요청했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당초 빨라야 7월에나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최근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및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으로 한미일 3국 간 전략적 공조가 강화되면서 시기가 앞당겨졌다.
기시다 총리가 조기 답방으로 화답한 형국으로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3월 16에 한일 정상회담에서 말한 셔틀 외교 복원이 현실화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양국 정상이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오간다는 차원에서 한일관계 개선, 양국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고 전했다.
아울러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은 지난 2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양자 회담을 갖고 한일 재무장관회의를 연내 일본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2006년부터 시작된 한일 재무장관회의는 의제를 미리 정해 의견을 폭넓게 교환하는 정례 회담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등 양국 간 경제 갈등이 불거진 2016년 8월 이후 열리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최근 일본 경산성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복원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한일 관계가 다시 회복되면서, 경제 관련 복원부터 이뤄지는 셈이다. 양국 정상은 회담에서 다양한 경제 소통 채널 복원에 이어 공급망 협력 등 경제 세부 분야의 확대 기조를 더 구체화할 전망이다.
한일 대북 공조 강화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일본 NHK 방송은 최근 “이번 회담에서 양 정상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협력 강화 등을 확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에 맞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이 강화되는 추세다. 양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주변에서의 한일 군사정보협력에 대해 심도있게 협의할 전망이다.
◇ 기시다의 ‘성의 있는 호응’ 여부와 수위 ‘주목’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윤 대통령이 주도한 징용 해법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성의 있는 호응’ 여부와 그 수준이다. 외교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앞서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발표한 징용 해법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호응을 바란다는 입장을 이미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는 3월 16일 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징용 해법에 따른 일본 측의 추가 호응 조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받자 “양국이 공조해서 하나하나 구체적인 결과를 내고자 한다”며 “셔틀 외교도 재개할 것을 확인했고 광범위한 분야에서 정부 간 의사소통을 강화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저도 윤 대통령과 개인적 신뢰 관계를 확인하고 긴밀히 소통을 도모하고자 한다”며 “구체적인 결과를 일본으로서도 내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3월 한일 정상회담 후 정권 지지율이 최고 50%를 돌파하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하는 등 정치적으로 힘을 얻은 기시다 총리가 한일 관계 개선을 가시화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징용 배상 문제 해결책을 지원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교도통신은 다만 “기시다 총리가 회담에서 역사 인식을 둘러싼 김대중-오부치 선언 같은 역대 일본 내각의 자세를 계승한다는 견해를 표명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시다 총리가 ‘사과’나 ‘반성’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정치권 일각에선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오르고 있지만 당내 4위 계파 수장에 불과한 기시다 총리가 최대 계파이자 한국에 크게 우호적이지 않은 아베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 전문가들 “김대중-오부치 선언문 다시 읽는 것도 방법”
전문가들은 일단 성의 있는 호응은 한일 양국의 정세를 모두 아우르는 선에서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대놓고 사과를 하기엔 일본 국내 정서를 무시할 수 없을뿐더러 답방에서 아무 답을 하지 않기에는 한국의 반발이 거셀 게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는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 일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하게 되면 일본의 과거 침탈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의 있는 호응을 보인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자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역대 정부 역사 인식을 같이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기시다 총리도 한국 정서와 정세를 잘 알기 때문에 이번 답방에서만큼은 우리 국민 눈높이에 견줄 만한 화답과 발언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양국 관계와 정서를 아우를 수 있도록 깊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답방에서 최우선으로 볼 지점이 안보 협력인지 과거사 갈등 해소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무작정 이번 답방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화답할 차례라고 기대감만 높여서는 안 된다”며 “일본은 한국 정부가 새로 출범할 때마다 딴소리를 하면서 사과를 요구하니까 사과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는 부분이 있고, 한국은 일본 정부가 사과는 해놓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하고 독도를 건드리니까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의 있는 호응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추상적으로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보다는 기시다 총리가 ‘김대중·오부치 선언’ 때 작성한 선언문을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여야, 정상회담과 별개로 ‘도 넘는’ 일본 행동엔 ‘경고’
한편, 최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일본 정부의 ‘도를 넘는 행동’에 대해서는 일제히 경고음을 내고 있다. 양국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다. 실제 지난 3월 16일 한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 정부는 과거사 관련 사안에 다소 선을 넘는 행동과 발언을 이어왔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공물 전달과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대표적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1일 기시다 총리가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내고 현역 의원 87명이 집단 참배를 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일본이 진정성을 갖고 과거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고 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의원총회에서 자신이 독도를 방문한 것을 놓고 “(일본 정부가 항의한 것은) 명백한 주권 침탈이자 내정 간섭”이라며 “독도를 분쟁 지역화 하려는 일본에 대한 우려도 알지만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11일 일본 정부는 외교청서를 통해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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