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쓸 전기 수도권서 생산”… 송전망 확충 난항에 ‘분산에너지’ 시동거는 정부
정부, 분산에너지 활성화 정책 연구용역 발주
전력 수요지 인근서 전력 생산·공급하는 개념
열병합·태양광에 SMR도 분산에너지로 인정
“수요지 주변 투자자에게 공적자금 혜택 줘야”
정부가 분산에너지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호남·영남 등 주요 전력 생산지와 수도권 등 수요지 간 송전선로 확충 난항과 사회적 갈등 심화, 전력 수급 불균형에 따른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분산에너지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지역 인근에서 중·소 규모로 전력을 생산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수도권에서 전력을 많이 쓴다면 전력 생산도 그 주변에서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주요 전력 수요지 주변에 활용 가능한 부지가 많지 않고 땅값도 비싸다는 점 등 분산에너지 연착륙의 걸림돌도 여럿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요지 인근에 투자하는 분산에너지 사업자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美·日 사례 참고” 분산에너지 활성화 대책 마련 착수
5일 정부와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전기 사업자와 연구기관, 대학 등을 대상으로 분산에너지 활성화 종합 대책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산업부는 미국·일본 등 주요국의 분산에너지 추진 동향 분석과 국내 여건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분산에너지 활성화 대책 제시 등을 연구 범위에 담았다.
전기사업법은 분산형 전원을 ‘전력 수요 지역 인근에 설치해 송전선로 건설을 최소화할 수 있는 40메가와트(MW) 이하 모든 발전 설비와 500MW 이하 집단에너지(열병합)·구역전기·자가용 발전설비’로 정의한다. 통상 열병합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분산형 전원으로 자주 거론된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 수급은 영남·호남·강원권의 해안가 대규모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한 다음, 이를 장거리 송전선로를 통해 수도권 등 전국 수요지로 보내는 식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전력 수요는 날로 늘어나는데, 송전망 보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송전선로 인근 주민의 극심한 반발이 지지부진한 송전망 확충의 주된 배경이다.
전력거래소와 전력시장감시위원회는 지난해 말 발표한 ‘전력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송‧변전 설비 건설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대 등으로 사업 추진이 지연·취소되는 등 송‧변전 설비 건설 계획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에 따른 기존 송전선로의 잦은 고장도 골치다.
여기에 송전망 건설 주체인 한국전력의 재무 상태가 나쁘다는 점도 지역 간 전력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송전선로 건설을 방해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정부는 오는 2036년까지 송·변전 설비 건설에 필요한 투자 비용을 56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말까지 한전에 쌓일 누적 적자는 52조원 이상일 것으로 관측된다.
◇ 소형모듈원자로도 분산에너지 인정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주민 수용성과 재무적 난항을 동시에 극복할 아이디어의 일환으로 분산에너지 활성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앞서 산업부는 올해 2월 14일 심의·확정한 ‘제3차 지능형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기본 계획(2023~2027년)’에서 “현재 13.2%인 분산형 전원 비중을 향후 5년간 18.6%로 5.4%포인트(P) 키우겠다”고 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5년까지 290억원을 투입해 잉여 전력을 열·수소 등으로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충전기를 통해 전력망에 연결된 전기차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활용하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또 소규모로 산재해 있는 분산에너지 발전 설비를 정보통신기술(ICT)로 연결해 하나의 발전기처럼 운영하는 한국형 통합발전소(VPP) 시장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에너지 수급 불균형에 따른 블랙아웃 가능성이 커지자 정치권도 힘을 합쳤다. 지난 3월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를 열고 분산에너지에 대한 편익 부여와 사용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긴 분산에너지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번에 여야는 소형모듈원자로(SMR)도 분산에너지로 인정하기로 했다.
◇ “수도권 인근 분산에너지 투자에 공적 자금 지원해줘야”
다만 분산에너지 활성화도 송전망 보강만큼이나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전력 수요지인 수도권 인근에 충분한 규모의 분산에너지 발전 시설을 지어야 하는데, 지방과 비교해 남는 부지가 적고 땅값도 비싸기 때문이다. 또 송전망과 마찬가지로 분산에너지도 주민 수용성 이슈를 극복해야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대부분 국민이 열병합 발전은 그나마 쉽게 수용하는 편인데, 나머지 발전원에 대해서는 경계심이 높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분산에너지 연착륙을 위해서는 정부가 전력 수요지 주변 분산형 전원 개발에 투자하는 사업자에게 확실한 혜택을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 학장(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은 “서울 등 핵심 수요지 인근은 땅값이 비싸니까 건설 비용 일부를 전력산업기반기금과 같은 공적 재원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유 교수는 “반대로 호남·영남 등 전력 자급률이 100% 이상인 전력 생산지는 분산에너지 시설을 추가로 지을 필요성이 낮은 만큼 이들 지역에 분산에너지 관련 투자를 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송전망 투자에도 기여하도록 일종의 부담을 안겨야 한다”며 “그래야 수요지 인근 건설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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