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앞으로 오토바이 ‘쌩쌩’…어린이집 25%는 스쿨존 지정 안돼

이학준 기자 2023. 5.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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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 지정 안 된 어린이집 전국 700여곳
골목에선 오토바이 쌩쌩, 1분 거리엔 왕복 6차선 도로
”어린이집 규모로 스쿨존 지정하는 것은 시대착오”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어린이집 입구 앞 도로로 오토바이가 요란한 모터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지나갔다. 어린이집 옆 건물 식당의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였다. 5분 사이 오토바이는 6대나 지나갔고, 일방통행 도로인데 역주행을 서슴지 않는 경우도 포착됐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1분밖에 걷지 않았는데, 왕복 6차선 도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이가 뛰어다니다 눈 깜짝할 새 사고를 당할 수 있을 정도의 근거리였다. 하지만 이 어린이집 주변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 원생이 30여명에 불과해 스쿨존 지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원생이 100명 이상인 어린이집 주변은 스쿨존으로 지정할 수 있지만 실제 지정률은 75%에 불과하다. 나머지 25%는 스쿨존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 통계에 잡히지 않은 100명 미만 소규모 어린이집까지 고려하면 실제 스쿨존 보호를 받지 않는 어린이집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어린이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잇따르는 만큼 학부모·교사 사이에서는 현실에 맞게 법·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3일 찾은 서울 서초구의 한 어린이집. 어린이집 입구와 닿아있는 도로로 5분 사이 오토바이 6대가 지나갔다. 1분 남짓한 곳에는 왕복 6차선 도로가 있는 곳이지만,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으로 지정돼 있지 않았다./이학준 기자

◇ 100명 이상 어린이집 75%만 스쿨존 지정... 강행규정 아냐

5일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개 시·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원생이 100명 이상인 전국 어린이집 2925곳 중 스쿨존으로 지정된 어린이집은 2193곳(75%)이었다. 나머지 25%는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스쿨존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이다. 초등학교(99%), 특수학교(94%), 유치원(86%)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치로 연령이 낮을수록 스쿨존 지정률도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현행법상 초등학교·특수학교·유치원·어린이집·학원 주변도로는 시속 30~50㎞ 이하로 운전해야 하는 스쿨존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정해야만 한다’는 강행규정은 아니어서 스쿨존이 없다고 당장 법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초등학교·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의 경우 정원이 100명 이상일 경우에만 스쿨존 지정 대상이 된다. 100명 미만인 경우라도 필요성이 인정되면 스쿨존 설치가 가능하지만, 예외규정에 불과해 지자체 의지에 따라 지정 여부는 천차만별이다.

서울의 경우 어린이집 303곳이 스쿨존 지정 대상이지만, 실제 설치된 곳은 절반 수준인 168곳에 불과했다. 부산·인천·광주·대전·경기·충북·제주는 지정률이 100%였지만 세종은 18%, 대구는 26.8%, 경북은 31.6%로 저조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100명 미만 소규모 어린이집까지 고려하면 실제 스쿨존 보호를 받지 않는 어린이집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 “실외활동 필수인데 사고 나면 어쩌나” 학부모·교사들 ‘우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은 물론 어린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쿨존 보호를 받아도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스쿨존조차 없으면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쿨존이 없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교사 김모씨는 “하루 일과 중 실외활동이 필수적으로 포함돼 있어 산책을 나가는데, 그때마다 스쿨존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영아가 위험요소에 대한 인지를 못해서 돌발상황이 항상 일어날 수 있다. 연령대가 제일 낮은 집단인 어린이집의 스쿨존 지정률이 낮다는 건 걱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어린이집 교사는 “현재 일하고 있는 어린이집은 스쿨존으로 지정돼 있는데도 초등학교 근처와는 다르게 차들이 쌩쌩 달리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덤프트럭이 주차돼 있을 때도 있다. 스쿨존이 있어도 이런데, 없는 경우는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출산율 감소로 어린이집 인원수가 날로 줄어들고 있는 만큼, 100명 이상의 어린이집만 스쿨존 지정 대상으로 삼는 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동작구에서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황모씨는 “요새 어린이집 인원이 많은 곳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정원수를 기준으로 스쿨존을 지정하는 게 이상한 것 같다. 소도시나 지방은 인구수가 더 적을 건데 그런 곳에 사는 아이들은 보호받지 말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이번 통계를 집계해 분석한 강 의원은 스쿨존이 학교를 뜻한다는 인식이 강해 어린이집 근처 교통안전에 대한 지자체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저조해 이같은 결과가 나타났다고 판단하고 있다.

강 의원은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 3년이 경과했지만 어린이 교통안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말 그대로 학교 근처를 지칭하는 ‘스쿨존’에만 국한되어 있던 것을 반증하는 결과”라며 “초등학생들보다 더 두터운 보호가 필요한 영유아 원생들을 위해 스쿨존 확대 등 정부와 지자체의 더욱 적극적인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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