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신봉하는 사회…섭식장애를 부추기다
정신질환 부작용 우려 마약류 의약품이 식욕억제제로 불티
[편집자주] 섭식장애를 앓는 인구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심지어 섭식장애를 앓는 연령대는 갈수록 어려지고 있는데, TV 속 앙상한 몸으로 연기하고 춤추는 연예인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향정신성 의약품을 불법으로 구입하고 복용해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섭식장애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젊은 여성들'만의 문제로 취급한다. 뉴스1은 섭식장애를 앓고 있거나 이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우리 사회가 이 질병을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지 6편의 기획물에 담았다.
(서울=뉴스1) 박상휘 박동해 박혜연 이정후 기자 = "나 그대로 사랑받을 수는 없을까.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자 희망이 사라졌다. 심지어 내가 죽어야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연예계 데뷔를 이유로 다이어트를 강요받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섭식장애를 앓고 여전히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가수 이혜인씨(활동명 바바라·35)의 말이다.
섭식장애란 비정상적인 체중 조절이나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인해 먹는 행위에 어려움을 일컫는 질환이다. 단지 노래가 하고 싶었던 소녀는 왜 섭식장애에 내몰렸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까.
섭식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개인의 의지' 문제 수준으로 치부된다. "먹는 것 하나 조절하지 못하느냐" 정도의 노력 문제로 말이다. 그러나 섭식장애는 단순히 다이어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환이다. 생물학적 요인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문제와 가정환경, 사회적인 강박까지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국제 공인 섭식장애학회(AED·Academy for eating disorders)는 섭식장애를 정신 질환으로 보고 있다. 섭식장애가 물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그 자체로 정서적, 인지적 문제까지 유발하기 때문이다.
◇ 다이어트 신봉하는 사회…5분 만에 마약류 의약품 구매
사회적으로 우리나라만큼 다이어트를 신봉하는 나라도 없다. 미디어에서는 날씬한 몸을 만들기 위한 식이요법과 운동 방법이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문제는 마른 것은 옳은 것, 혹은 예쁜 것이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이 섭식장애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고 뱉기) 등의 해시태그를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10대와 20대 사이에서는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의 마른 몸매)라는 단어가 유행이고, 찬성이란 뜻의 '프로'(pro)와 거식증이란 단어 '애너렉시아'(Anorexia)의 합성어인 '프로아나'가 되려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잘못된 인식과 비정상적인 몸매 선호 현상은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이라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뉴스1>은 의약품 오남용의 실태를 살펴보고자 이른바 '다이어트약 3대 성지' 중 한 곳으로 불리는 서울 구로구의 한 병원을 찾았다.
취재진은 2주 전인 지난달 19일 오전 8시에 이곳을 찾았는데 병원이 문을 열기 전부터 3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번호표를 받고 대기 중이었다. 대기 줄 가장 앞에 서 있던 여성은 전날 저녁 10시30분부터 기다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취재진도 진료를 신청한 긑에 이날 오후 오후 3시30분에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기나긴 대기 시간과 달리 진료는 순식간에 끝났다. 진료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고, 살을 빼야하는 목적이나 관련 질환을 묻는 상담은 사실상 없었다. 반면 처방받은 약은 넘쳐났다. 처방받은 약을 세어보니 한번에 섭취해야할 양만 9정에 달했다.
처방받은 약은 디에틸프로피온 계열의 의료용 마약류로, 남용할 경우 항우울제 등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줘 우울감, 자살 충동 등 정신과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들이었다.
사실상 돈만 있으면 마약류 의약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구조로 처방분도 무려 한달 치에 달했다. 물론 처방된 약의 부작용 등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이 같은 의료 행위가 불법은 아닐까 의심이 갔는데, 실제로 해당 병원은 지난 2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됐다.
약물 불법 구매는 온라인으로도 이어진다. '살빠지는 약'으로 불리는 디에타민(나비약)을 SNS에서 한 알에 7000~8000원에 구매했다는 청소년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디에타민은 디에틸프로피온보다 훨씬 더 위험한 약으로, 반드시 처방이 필요한 의약품이다.
이진복 분당나우리가정의학과 원장은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란 인체의 중추신경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약물로 남용, 의존성, 금단증상 등이 생길수 있어 정부에서는 마약류 식욕억제제로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 약물"이라며 "이 약물을 남용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불면증, 두근거림, 입마름, 초조함, 두통, 흥분, 예민함 등을 일으킬수 있고 장기간 복용할 경우 의존성, 금단증상과 더불어 신경과적 문제, 정신과적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마른 몸이 옳은 것이라는 사회적 강박…섭식장애 부추겨
마른 몸매 선호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섭식장애 환자 역시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섭식장애 환자는 지난 2017년 3116명이었지만 2021년에는 4881명까지 증가하는 등 가파르게 늘고 있다. 섭식장애 환자의 연령대도 계속 어려지고 있다. 60대 이상 노년층을 제외하고 20~30대가 주로 겪던 섭식장애는 최근 10대 환자 비중이 가장 크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통계 밖 환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제대 서울백병원에서 섭식장애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김율리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섭식장애 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3%에 이른다. 우리나라만 대략 155만명에 달하는 수치다.
문제는 섭식장애를 이른바 개인의 의지 박약 혹은 젊은 여성들의 외모 강박 정도의 문제로 치부하다 보니 제대로된 치료나 예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문가들도 깡마른 몸매를 동경하는 사회와 문화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마른 몸매가 예쁘다는 편견을 주고 평균보다 살이 찌면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매도하는 사회적 경향이 이른바 프로아나를 만든다는 얘기다.
실제로 취재진이 접한 대다수의 청소년은 SNS에 올라오는 강마른 몸매를 동경하거나 그렇게 되고 싶어 부적절하게 살을 빼는 경우가 많았다. 깡마른 아이돌 사진을 이상적인 몸매로 규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부적절한 방법으로라도 살을 빼고 싶은 이유를 "깡마른 몸매가 다들 예쁘다고 해서…"라고 설명했다.
안주란 백상식이장애센터 센터장은 "어린 아이들일수록 외부에서 들어오는 메시지를 무분별하게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며 "화면에서 나오는 비현실적인 몸매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고 꼭 돼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야만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마른 몸에 대한 상반된 두 시선…우울증·자해로도 이어져
우리 사회에서 프로아나 혹은 섭식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부정적이고 의지 박약이라는 비난에 주로 가깝다. 결과적으로 본인의 선택으로 인해서 얻게된 질병 아니냐는 시선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정반대의 평가도 같이 나온다. 굶거나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진 몸매에 대해서 '예쁘다', '날씬하다'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시선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중적인 태도가 섭식장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과거 거식증을 겪었다는 박소희씨(가명·22)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뛰기만 한 적이 있었는데 물 한모금 먹기 힘들 정도로 몸이 망가져있었다. 그런데 주위에선 나의 인스타 사진을 보고 '예쁘다'고 칭찬하고 있었다. 내가 뭘하고 있는건지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이같이 일상적으로 마른 몸이 강요되는 사회에서는 프로아나는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섭식장애와 같은 정신질환 환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안 센터장은 "비정상적으로 살이 빠지게 되면 2차적인 문제가 줄줄이 따라온다"며 "우울증과 불안, 강박, 공황장애, 중독 등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으로 이어져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거식과 폭식이 되풀이되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유발하고 심하게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섭식장애가 심해지면 영양 부족은 물론이고 뇌신경에 문제가 생겨 자해를 하는 경우도 발생하며, 골다공증과 같은 2차 질병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섭식장애에 따른 치사율이 5%가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sanghw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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