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빠른 어린이, 보람도 갑절"…반세기 수술실 지킨 여의사
40년 넘게 수술 3만여 건 집도…정년퇴직後 10년째 '현역'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도 필수의료 인력난…"여전히 응급콜 대기조"
"환자 회복 빨리 보고 싶어 외과 선택"…탈장·복벽결손·담도폐색 등
4번 수술에도 변 샜던 남아 건강히 성장…간호사 되어 재회한 여아도
'미생'에서 '완생'으로…"아이들 고쳐주는 일, 몇 십 배 보람 있어" 강조
"돌이켜보면 우리 어린이들이 저희의 가장 큰 선생님이셨기에,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올 2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소재 서울대어린이병원 출입구에 세워진 실외용 배너가 뒤늦게 화제가 됐다. 전문의 자격을 갓 취득한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의사 14명이 쓴 '환자와 보호자, 직원들께 드리는 감사의 글'은 잔잔한 울림을 줬다. 초저출산으로 심화된 인구위기 속에서 '폐과'까지 거론되는 소청과에 "늘 어린이들의 곁을 지키며 돌보는" 의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크고 작은 잔병치레를 하는 아이들에게 좀 더 익숙한 병원은 내과인 소청과지만, 소아외과도 인력난을 겪기는 매한가지다. '필수의료'의 핵심인 외과의 분과인 소아외과는 영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외상 등을 치료한다. 현재 전문의 자격이 있는 소아외과의 중 의료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의사는 많아도 20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년을 넘긴 교수들이 야간·휴일을 가리지 않고 '응급 콜(call)'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중앙대병원 박귀원 소아외과 임상석좌교수는 반세기 동안 그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증인'이다. 1949년생으로 일흔을 넘긴 나이지만, 외과적 문제를 안고 태어난 아이들의 수술을 여전히 직접 집도하는 현역이다.
지난 2013년 서울대병원에서 정년퇴직한 그는 서울대 의대 1년 선배인 김성덕 전 중앙대의료원장의 간곡한 부탁에 중앙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아 마취 담당이었던 김 전 원장과는 '수술방에서 맨날 보던 사이'라 거절할 수 없었단다. 막연히 "길어야 3~4년"일 거라 생각했는데, '후임이 생길 때까지만 해보자' 하고 근무를 이어온 세월이 벌써 10년이다.
"한 2년 전에 어떤 레지던트가 (소아외과를) 한다 하더니 전문의를 따고 나서는 '선생님, 죄송해요. 못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결혼했으니 부인이 돈 벌라고 한다면서…지금 다시 해보겠다는 2년차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내년·내후년 전문의가 되고 나서도 그 마음을 먹을 건지는 두고 봐야죠(웃음)."
춘천에서 서울로 매일 출·퇴근하는 지금은 일과 이후 응급환자가 오면 당직 레지던트로부터 전화가 온다. 바로 달려가기엔 거리가 있다 보니 '장 중첩증' 등 정말 분초를 다퉈야 하는 수술은 소아를 본 경험이 있는 외과 교수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들에게 수십 년간의 노하우를 전수한 것도 박 교수다. "(어찌 됐든) 24시간 대기상태로는 있어야 하는 거죠."
수술건수만 3만 건이 훌쩍 넘는 국내 소아외과학의 최고 권위자지만, 처음부터 스스로 원한 길은 아니었다. 대장항문 분야 개척자인 박길수 서울대 의대 교수를 아버지로 두고 어머니도 산부인과의인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당초 법조인을 꿈꿨다. '법대 가면 학비를 대주지 않겠다'는 압박에 못 이겨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수련과정에서 각 과를 돌다 보니 내과는 '성격이 급해서', 산부인과는 개원의였던 어머니를 보며 산모 출혈 등 '시도때도 없는 응급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어렵겠다 싶었다.
환자 예후와 회복을 빨리 보고 싶어 외과를 택했더니, 극심한 반대가 뒤따랐다. "1972년 2월 의대 졸업할 때 1월이면 인턴 서류를 내야 했어요. 외과 가겠다 했더니 아버지가 '누가 여자한테 배 내놓고 수술을 받겠냐'고…그 당시만 해도 생각이 그랬어요. 지금이야 당직실이 '예전에 비하면 호텔'이지만 그땐 12시 통금(통행금지)도 있을 때니 (새벽) 두세 시면 침대 하나 있는 데서 고꾸라져 자는 거예요. 의국장이었던 김진복 교수님과도 2시간 동안 싸웠죠."
막상 외과의가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성별을 이유로 치료에 곤란을 겪지는 않았단다. 반 년 간 무의촌 파견근무를 해야 전문의 응시자격을 줬던 레지던트 2년차엔 춘천 도립병원에서 '외과 과장 노릇'도 했다. 의궤양으로 내원한 한 50대 농부는 '스물다섯 여자 외과의가 온다는데 솔직히 겁나지 않았냐'는 질문에 외려 "꼬매는 건 여자들이 더 잘하지 않냐"고 눙치기도 했다.
소아 쪽으로 진로를 정한 건 박 교수의 은사인 김우기 박사(당시 서울대 의대 조교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에서 소아외과학을 공부한 김 박사는 1978년 5월 서울대병원에 '소아외과' 간판을 처음으로 단 장본인이다. 선천성 기형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막기 원했던 김 박사는 "어른은 수술하고 5년 더 살면 '잘 살았다'고 하지만, 애들은 80살은 살게 해주니 그만큼 더 보람 있는 일 아니냐"며 제자를 설득했다.
"그때 (인식이) 소아과 레지던트들을 보고 '애니멀 닥터(animal doctor)'라 불렀거든요. 설사로 오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안 그래도 작은 혈관이 탈수 때문에 안 보이니 주사 놓기가 힘든 거예요. 진짜 (탈수가) 심한 애들은 한 시간을 해도 못 찾는데…그럼 애는 빡빡 울지, 보호자는 신경이 곤두서는 거예요."
그렇게 1979년 9월부터 소아외과 전임의로 일한 박 교수는 1년에 많게는 1200건, 적게는 600건의 수술을 집도했다. 중앙대병원에 온 뒤로도 1200여 명의 소아를 수술실에서 만났다. 가장 흔한 환자는 '서혜부(사타구니) 탈장'이다. 남아는 100명 중 1명, 여아는 1천 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데, 수술은 10분 남짓이면 끝난다.
박 교수는 "(탈장 수술은) 따로 입원을 안 시켜도 되고 오전에 수술하면 오후에 퇴원한다"며 "예전에 '5대 독자'인 아들의 탈장으로 3번이나 응급실에 온 아빠가 있었다. 아들 마취를 겁내 하더니 수술 받고 나서는 '이렇게 쉬운 줄 알았으면 진작 시킬 걸 그랬다'고 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물론 상태가 더 심각한 어린이들도 있다. 몸 속 장기들을 감싸줄 복막이 없어 창자 등이 튀어나오는 복벽결손, 담즙의 유출로 황달을 일으키는 담도폐색, 장 운동을 맡은 신경절세포가 없어 배변 장애를 유발하는 거대결장 등이다. 박 교수는 "담도폐색증 수술 후 정상으로 돌아오는 애들은 '3분의 1' 정도다. 간경화가 와서 돌 전에 간이식을 해줘야 사는 아이들도 있다"며 "예전에 간 이식을 못했던 시절에는 다 놓쳤던 환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소아 환자는 대체로 성인에 비해 수술 시간이 짧지만, 몸이 다 자라지 않은 상태다 보니 기술적으로는 더 정교함이 요구된다. 박 교수는 "(수술로 일부) 잘라내더라도 정상조직은 건들지 말아야 되다 보니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한다"며 "(잘못되면) 크는 데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장 5cm를 자르더라도 '이걸 정말 잘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환자들도 많다. 박 교수는 '대장 전체에 신경이 없어 창자가 움직이지 않았던' 두 살배기 남아를 첫손에 꼽았다.
"소장이 늘어나는데, 소장-직장 사이 샛길이 생겨 똥이 그리로 새는 거예요. 배가 빵빵한 채로 난리를 치며 애가 견딘 건데, 도저히 안 되겠으니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소장도 염증이 심해서 늘어나 있지, 신경도 없지…샛길 있는 데로 창자를 그 위로 꺼내놓고, 염증이 좀 좋아지면 수술해주자 했더니, 4~5일이 지나면 어김없이 위쪽에 구멍이 나서 배로 대변이 줄줄 샜어요."
수술하면 터지고, 또 수술하기를 서너 번 반복하고 나니 박 교수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네 번째 수술 때는 "염증이 심해서 기계로 자르는데도 피부조직이 잘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흘이 지나 또 변이 새자 박 교수는 '집으로 데려가 장례를 치르겠다'는 아이 아빠의 뜻에 따라, 환자를 제주로 떠나보냈다. 그런데 웬걸, 마지막을 당부했던 제주도립병원 후배는 이튿날 '왜 멀쩡한 아이를 보내셨냐'고 연락해왔다. 회복이 되더라도 최소 닷새는 걸려야 정상인데, 하루 만에 새는 곳, 염증 하나 없이 깨끗해졌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제주도 내려가서 몇 달에 한 번씩 (외래를) 오다가, 18살이 돼서 입대할 때 진단서를 떼러 왔는데 키도 크고 너무 잘 컸더라"며 "사람 생명이란 게 우리가 다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의학적으로는 정말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돌이켰다.
건강한 성인이 되어 일터에서 재회한 인연도 있다. "여기(중대병원) 오니까 간호사 한 사람이 자기가 8~9살 때 담도낭종 수술을 저한테 받았다는 거예요. 지방 사람이었는데, 엄마가 '서울 가서 수술받자' 해서 딸을 데려 온 거죠. 집에 가서 어머니께 제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이 널 수술해준 사람'이라 했다고 하더군요."
선천성 기형의 명의로 꼽히는 박 교수지만, '기형아' 또는 '이상아'란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아직 '완생'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미생아'가 더 와닿는다고 했다. "식도가 막혀 태어나 음식을 못 먹거나 복벽결손이 있고 하면 진짜 죽을지 살지 모르는 거거든요. 수술해서 고치면 완전히 정상이 되는 거니까, 그 단어가 맘에 쏙 들더라고요."
고질적 저수가와 인력 부족 등 필수의료 인프라 문제는 곧 소아외과의 현실이기도 하다. 박 교수도 "나라에서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고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소청과를 지원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힘든 신생아 중환자실은 안 돌겠다' 하는 레지던트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꼰대'라 할 수도 있겠지만, 좀 아쉽죠. 사람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아이들을 고쳐주는 과를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성인보다 회복이 빠르니 어떤 면에서는 재미도 있어요. 어른들은 수술을 하고 다 나아서 퇴원할 때가 돼도 걱정이 많으니 인상을 쓰는데, 애들은 수술해놓으면 굶을 때만 문제지, 먹게 되면 방긋방긋 웃고 그렇잖아요. 좋아지는 게 금방 보이니 몇 십 배 더 보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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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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