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자유방임’은 자유주의 본질 배반한 것
자유주의 ‘잃어버린 고리’ 복원
“개인의 이익 아닌 공공선 증진이
자유주의 이념의 핵심 가치”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공동체의 도덕, 개인의 윤리가 되다
헬레나 로젠블랫 지음, 김승진 옮김 l 니케북스 l 2만6000원
오늘날 정치 용어 가운데 ‘자유주의’(liberalism)라는 말처럼 논란을 부르는 말도 달리 찾기 어렵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이념으로 쓰이는 데 반해 유럽에서는 ‘작은 정부’를 옹호하는 이념으로 쓰인다. 자유주의는 때로는 진보주의와 결합하기도 하고 때로는 보수주의와 어울리기도 한다. 자유주의라는 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길이 없을까? 스웨덴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역사학자 헬레나 로젠블랫 뉴욕시립대 교수가 쓴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는 자유주의라는 말의 역사를 면밀하게 살펴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고리’를 되찾아냄으로써 자유주의 이념의 윤곽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특히, 영국과 미국이 자유주의 이념의 산실로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프랑스와 독일이 자유주의 이념의 탄생과 성장에 결정적 기여를 했음이 이 책을 통해 분명해진다.
지은이는 먼저 자유주의가 근대 정치 이념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역사, 곧 ‘자유주의의 전사’를 탐사함으로써 ‘자유’의 본디 의미를 복원하려 한다. 그 본디 의미를 알아야만 자유주의라는 말이 왜 그토록 많은 혼란을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유주의라는 말의 뿌리를 찾아 고대 로마로 돌아간다. 리버럴(liberal)이라는 말의 라틴어 단어는 ‘리베랄리스’(liberalis)이고 그 명사형은 ‘리베랄리타스’(liberalitas)인데, 그 말은 ‘자유로운 자로 태어난 사람에게 걸맞은 덕성’을 뜻했다. 노예가 아닌 자유 시민으로서 동료 시민을 고귀하고 너그러운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리베랄리타스였다. ‘자유로운 인간’이란 제멋대로 살아가는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관용의 정신으로 무장하고서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인간, 도덕적 용기를 지니고 자기절제를 실천할 줄 아는 인간을 뜻했다. 로마 정치가 키케로가 쓴 <의무론>은 이런 의미의 리베랄리타스를 설파한 대표적인 저작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리베랄리타스는 근본적으로 상류계급의 미덕이었다. 이 고전적인 의미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근대의 문이 열린 뒤, 특히 17세기 이후 계몽주의가 시대의 주된 흐름이 된 뒤의 일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리버럴함’이 종교적 관용을 뜻하게 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은 18세기 독일에서 나온 ‘리버럴 신학’이다. 이 신학은 도그마의 제약에서 벗어나 비판적인 질문에 마음을 여는 신학, 교리보다 도덕을 강조하는 신학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책은 ‘리버럴’의 의미가 정치적으로 분명한 성격을 띠게 된 것으로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그 뒤를 이은 미국 헌법을 든다. 미국 헌법을 통해 리버럴함은 군주가 신민에게 베푸는 관대함이나 귀족이 서민에게 베푸는 관후함이 아니라 인민이 스스로 세운 헌법을 통해 자신들에게 자유로움과 너그러움을 보장함을 뜻하게 됐다. ‘리버럴’이라는 말에 정치적 의미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주의라는 말이 탄생하는 데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프랑스대혁명이었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은 초기에 유럽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으나 공포정치로 과격화한 끝에 1794년 로베스피에르 처형으로 막을 내렸다. 그 직후에 프랑스 정치가 뱅자맹 콩스탕이 ‘리버럴의 원칙’을 주창하고 나섰는데, 콩스탕은 공포정치를 거부함과 동시에 반혁명도 거부함으로써 혁명이 이룬 ‘리버럴한 성과’를 온전히 지켜내고자 했다. 콩스탕이 제시한 리버럴의 원칙은 반혁명 세력으로부터 공화정을 수호하고, 법치와 평등, 헌법과 대의제를 지켜내며, 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을 뜻했다. 콩스탕의 기대와 달리 프랑스혁명은 나폴레옹 독재로 귀결했고, 황제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에 정복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 맞서 스웨덴과 스페인에서 일어난 저항 세력을 지칭하는 말로 ‘자유주의’라는 말이 등장했다. 프랑스 혁명의 성과를 받아들여 실현하려는 세력의 정치적 운동을 가리켜 ‘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떤 경로로 결합했는지 상세히 살핀다. 자유주의자들은 초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대중이 정치의 주체가 된다는 민주주의 원리가 자유주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독재를 불러들이기 쉽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848년 혁명으로 프랑스 대통령이 된 루이 나폴레옹이 그 전형적인 경우를 보여준다. 삼촌 나폴레옹 1세를 모범으로 삼은 루이 나폴레옹은 1851년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한 뒤 1852년 국민투표를 통해 황제(나폴레옹 3세)로 등극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나폴레옹 3세의 ‘민주적 독재’를 카이사르주의 또는 보나파르트주의라고 불렀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두려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조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이 시기에 나타났는데, 1861년 에이브러햄 링턴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 그 뒤 자유당 지도자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영국 총리가 된 것이 두 이념의 통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무렵 프랑스 언론인 오귀스트 네프처가 <시대>라는 신문을 창간하고 그 첫 호에서 자유주의 정당의 목적은 민주주의를 계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멈출 수 없는 시대의 대세이므로 자유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끌어올려 독재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자유민주주의)가 처음으로 역사에 얼굴을 내밀었다.
19세기 후반 상황에서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두 종류의 자유주의’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그 전장은 독일이었고 쟁점은 ‘자유방임이냐 정부 개입이냐’였다. 당시 유럽에서 영향력이 큰 경제사상은 ‘자유방임주의’였다. 19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바스티아가 그 사상의 대표자였다. 여기에 맞서 1870년대에 등장한 것이 독일의 ‘윤리적 경제학’이었는데, 이 학파는 자유방임이 국민 대다수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면서 정부의 개입을 통해 빈곤과 질병과 무지를 퇴치하고 불평등을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자유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자유를 가능케 하는 여건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 이 윤리적 경제학자들의 생각이었다. 독일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새 자유주의’(New Liberalism)이라고 불렀다. 독일의 윤리적 경제학은 이웃나라에 즉각 영향을 주었고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새 자유주의’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주의와 가까워지게 된다.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도 말년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1893년 영국의 자유주의 주간지는 “일하는 사람들의 운명에 공감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품는 것을 사회주의라고 부른다면 그 면에서 우리는 모두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했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사회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일체의 정부 개입에 반대하고 철저한 자유방임을 주장했다. 스펜서의 사상은 미국의 제자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에게 그대로 이어졌는데, 섬너는 독일 사상을 ‘돌팔이 수법’이라고 비난했다. 이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윤리적 경제학 편에 섰다. 이 시기에 미국 경제학 교수진이 독일 유학파로 채워졌고 이 경제학자들이 ‘자유방임 자유주의’에 맞서 ‘정부 개입 자유주의’를 옹호했던 것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20세기 미국 철학자 존 듀이는 자유주의에 두 종류가 있으며, 자신이 지지하는 자유주의는 더 높은 평등을 추구하고 정부의 힘을 빌려 금권정치에 맞서는 자유주의라고 주장했다. 듀이의 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는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대통령 취임과 함께 뉴딜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정부 개입을 강조하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미국 자유주의의 본령이 됐다.
하지만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과 그 후의 냉전 시기에 자유주의는 한번 더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그 변화는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이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함으로써 시작됐다. 1944년 <예속의 길>을 펴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보수파의 대표자였다. 하이에크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라는 것은 형용모순이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개인주의 사상에서 나온 자유주의가 진정한 자유주의이며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는 독일에서 온 가짜 자유주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루스벨트식 뉴딜 정책은 독일의 운명을 되풀이하다 전체주의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믿음이었다. 하이에크 부류의 비판은 냉전이 시작된 뒤 점점 더 거세졌고, 뉴딜 자유주의는 ‘사회주의’, 심지어 ‘공산주의’로 불렸다. 이런 공격에 밀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의 요구를 낮추어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자유주의, 곧 개인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자유주의다.
지은이는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가 ‘개인의 권리와 이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의 증진, 공동체에 대한 헌신, 이기심을 넘어선 도덕적 성숙’에 있다고 강조하며 자유주의의 본디 가치를 바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역사적 경로를 통해 그려낸 자유주의는 오늘날 통용되는 자유주의보다는 진보적 공화주의를 더 닮았다. 자유주의는 공화주의와 상충하기는커녕 그 본디 이념에서 보면 공화주의와 분리될 수 없는 이념이라는 것을 이 책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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