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앗아간 4남매 웃음소리·살결…“살아남았지만 죽은 사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좁고 낡은 집이었지만 나이지리아어, 영어, 한국어로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로 따뜻한 에너지가 가득 찼었습니다. 웃음소리, 따듯했던 살결. 그 모든 걸 더는 느끼지 못해요."
어린이날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8일 <한겨레> 와 만난 펠릭스씨 부부는 "아이들이 사무치게 그립다"고 말했다. 한겨레>
ㄱ씨는 "매일 오후 4시50분에서 5시 사이만 되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간식을 준비했었는데,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이제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좁고 낡은 집이었지만 나이지리아어, 영어, 한국어로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로 따뜻한 에너지가 가득 찼었습니다. 웃음소리, 따듯했던 살결…. 그 모든 걸 더는 느끼지 못해요.”
텅 빈 안방에 앉은 아버지 펠릭스씨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이지리아인 펠릭스씨 부부의 삶은 3월27일 이후 멈춰버렸다. 그날 새벽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가족이 살던 42㎡(약 13평)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안방에서 잠을 자던 4남매(11살·7살·6살·4살)가 목숨을 잃었다. 15년 전 한국에 온 그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에 왔는데 지금은 모든 걸 다 잃은 심정”이라며 “나는 살아남았지만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어린이날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8일 <한겨레>와 만난 펠릭스씨 부부는 “아이들이 사무치게 그립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한달. 아이 4명을 한꺼번에 잃은 슬픔과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부부는 매일 일상 속에 스민 아이들을 발견한다. 아버지 펠릭스씨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장을 보곤 했다. “마트 주차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힘을 합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곤 했어요. 제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이들 품에 선물을 하나씩 안겨주는 것이었죠.” 아이들이 떠난 뒤 혼자 마트를 찾는다는 그는 텅 비어버린 자동차 트렁크를 보며 북받치는 그리움에 바닥에 주저앉아 울곤 한다. 평소 같으면 부부의 선물을 한껏 기다리고 있었을 4남매는 지금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의 한 봉안시설에 안치돼 있다. 지난 2일 가족은 아이들을 보러 시설에 다녀왔다.
화재 이후 남은 가족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지역사회와 민간단체 지원으로 보증금 600만원, 월세 45만원의 집으로 이사했다. 화재가 가족의 지난 세월을 모두 태워버린 탓에, 이날 부부의 집엔 휴지, 생수 등 생필품과 이전 집에서 급히 챙겨 나온 배낭, 홀로 남은 2살 막내딸 엔젤의 기저귀와 장난감, 옷가지만 놓여 있었다.
허리가 좋지 않아 2살 막내딸을 돌보며 집에서 지내는 탓에 아내 ㄱ씨가 느끼는 일상의 고통은 더욱 크다. 아내에게 동생 4명을 살뜰히 챙기던 11살 큰딸은 “기쁨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큰딸은 한국말이 서툰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의 학교 공부도 챙겨주고, 이웃들과 소통하는 역할도 척척 해냈다. ㄱ씨는 “매일 오후 4시50분에서 5시 사이만 되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간식을 준비했었는데,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이제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두살배기 막내딸 엔젤은 여전히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다시는 볼 수 없는 언니·오빠들을 찾곤 한다. 펠릭스씨는 “서로 안아달라 경쟁하는 언니·오빠들 때문에 엄마·아빠 품에 잘 안기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혼자가 되니 엔젤도 ‘뭔가 이상하다’ 싶은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의 화재 원인 감식 결과, 지난 3월 빌라 화재 원인은 텔레비전(TV)과 냉장고를 연결한 멀티탭 합선이었다. 앞서 이들 가족은 2021년 1월에도 반지하 집 벽면 스위치에서 시작된 화재로 둘째 아들이 화상을 입은 바 있다. 이들 부부와 마찬가지로 도심 외곽 혹은 땅 아래 반지하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은 여전히 화재 등 재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 3월 불이 났던 안산시 빌라 건물에는 나이지리아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 이주민 11가구 41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박천응 안산이주민센터 대표는 “펠릭스 가족처럼 코리안드림을 품고 한국에 온 이주민들은 경제적 토대가 약한 상태에서 사정에 맞는 주택을 구할 수밖에 없다 보니 반지하 같은 열악한 곳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1kg로 쪼그라든 발가락 12개 미숙아…그 생의 끝에 선 의사
- 윤 대통령 지지율 33%…방미 평가 긍정·부정 42% ‘팽팽’ [갤럽]
- 박광온 “대통령, 야당 대표 먼저 만나는 것이 순리이고 순서”
- ‘단역배우 자매 사망’ 가해자, 드라마 참여 논란…MBC “계약 해지”
- 김민재의 나폴리, 마라도나의 영광을 되살리다
- 이재오 “윤석열 정부 40점…태영호 사퇴, 이진복 경질해야”
- “오늘만 주검 5구 봤다…멘탈 버텨주려나” 어느 소방관의 고백
- 러 “‘크레믈 드론 공격’ 배후는 미국”…미 “명백한 거짓말” 반발
- 어린이날, 하루종일 꾸물꾸물…내일 오후까진 비온대
- 화마가 앗아간 4남매 웃음소리·살결…“살아남았지만 죽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