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60. 세상의 희한한 축구 경기
멜라네시아 뉴기니 가후쿠족-가마족
비겨야 끝나는 축구, 소통 매개로 이용
차원 높은 고귀한 인간미 축구에 투영
현재 우리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시대
극단적으로 경쟁하는 사회 되어버려
그게 2010년 어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새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단 말인가. 하지만 재미난 경험이어서일까. 빨간 낙관을 하얀 종이에 찍듯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당시 매주 목요일 밤(7∼9시)에 춘천시립도서관에서 진행된 인문학 강의에 참석하곤 했는데, 강연자께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도 아직 못 읽어봤는데요.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라는 책 안에 폴리네시아인가 어딘가의 원주민들이 축구를 하는데, 웃기게도 그 사람들은 절대로 이겨서는 안 된다네요. 비겨야 경기가 끝난답니다. 여러분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읽어보십시오.”
수강생 모두 참기름에 미끄러지듯 왁자그르르 한바탕 크게 웃고 넘어갔다. 그리고 한 달 동안의 강연이 흘러갔고 강사분도 더는 그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상하게 그 말이 잊히지 않았다. 참으로 재미나고 독특한 발상이지 않은가. 미개인들을 개화시키겠다며 영국이건 프랑스건 서양인이 축구를 가르쳐 줄 땐 분명히 스포츠로서의 승부를 가르는 경기였을 텐데 어찌하여 이기고 짐을 떠나 무승부를 추구한단 말인가.
하여 큰맘 먹고 도서관에서 문제의 그 도서를 빌린 이유도 바로 위의 내용이 진짜로 책에 실려 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정말로 있었다. 와. 그때의 기분이란! 마치 어려운 숙제를 끝낸 아이의 홀가분함이라고 할까? 아니면 우여곡절의 항해 끝에 보물섬에서 진귀한 보물을 발견한 짐 호킨스(‘보물섬’, 스티븐슨)의 마음 같다고나 할까? 어쨌건 양쪽 입아귀가 실쭉 올라붙게 흐벅진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었다.
당시에 적어 놓은 메모를 보니까 위 내용은 89쪽에 있었다.(번역본은 한길사)
‘그들은 축구를 배웠는데 양 팀의 승부가 똑같아질 때까지 며칠이고 계속해서 시합을 한다.’
무승부 축구의 주인공은 정확하게 멜라네시아 뉴기니의 가후쿠족과 가마족이었다. 레비 스트로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두 부족은 축구를 제대로 배웠지만 그것을 색다르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즉 ‘축구’이긴 하나 개념이 ‘변환’된 축구요 ‘경기’가 아닌 ‘의례’로 자기화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희한한 축구 경기로 ‘승화’시킨 가후쿠족과 가마족 사람들을 우리는 과연 미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들은 한 차원 높은 고귀한 인간미를 축구라는 형식의 스포츠에 투영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그들은 두 부족이 서로를 위한 소통과 균형의 매개로 축구를 달리 이용한 것이었으니 이 얼마나 현명한 생각인가. 바로 이것이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이 아니겠는가. 100 년 전의 일이라고 내팽개칠 일은 아닌 것 같다. 21세기를 사는 지구촌 사람들, 특히 한국인이 그들을 거울삼아 우리 사회를 재해석해 보면 어떨까 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생각의 서로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불통의 시대에 살게 되었고 세대와 계층 간에 만연한 위화감 탓에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브레히트)의 한복판에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지 않은가. 어느 외국 언론이 오늘의 한국인을 가리켜 “다른 행성에서 온 신인류”라고 칭송했을 만큼 우리는 경이적이고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생산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의식의 속도를 추월해서인지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경쟁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힐링(Healing)
이 강조되는 사회. 그것은 곧 그만큼 피로 지수가 높다는 방증이 아닌가. 풍요에 중독되어 쫓기듯 사는 우리가 삶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명저 ‘슬픈 열대’에서도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명확한 입장을 밝힌다.
“오만이라는 문명의 시각을 내던지라. 그때에서야 비로소 사람의 영혼에 사랑과 희망이 싹 튼다!”
그렇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품느냐에 따라 세상도 사람도 달라진다.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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