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의 이세계 (ESG)] 억울한 한전…반ESG적 정치가 문제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2023. 5.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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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전기요금 관련 민·당·정 간담회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 의장은 한국전력(한전)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고 한다. 그는 “도덕적 해이의 늪에 빠진 채 요금을 안 올려주면 다 같이 죽는다는 식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여론몰이만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에게 요금을 올려달라고 하기 전에 한전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을 해달라고 여러 차례 촉구했지만, 아직 응답이 없어 개탄스럽다”고 질타했다. 이에 한전은 기존에 발표한 2026년까지 14조원의 자구책에 이어 추가로 직원들 임금도 삭감하는 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이 보도를 보고 눈과 귀를 의심했다. 박 의장이 전기요금과 한전의 관계를 알고도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랬다면 국민을 우습게 보는 발언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언급할 가치도 없다. 전기요금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최종 결정을 하지만, 그전에 미리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한다. 그리고 여당(국회)과도 협의를 한다. 지난달 20일도 그런 자리였다.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 결정은 원가주의에 따른다’는 원칙이 흔들린다. 여당 입장에서는 물가, 국민 여론, 내년 선거 영향 등 고려할 게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어느 정권에서나 그랬다. 그 결과 전기요금을 ‘정치요금’이라고도 부르게 됐다.

그런데 박 의장의 ‘한전이 국민을 겁박했다’는 발언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왜냐하면 전기요금과 발전원가에 관한 한 한전이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전의 큰 적자는 발전원가는 오르는데 정부(여당)가 전기요금을 동결시켜 그렇다. 발전원가 인상은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크게 올랐다. 그런데 전체 발전량 중에서 국제시세 영향을 받지 않는 원자력이 30%나 되고, LNG 발전은 28%인데 왜 전체 전기요금이 올라야 하는가. 그 이유는 바로 도매가격(SMP) 결정구조 때문에 그렇다.

전기료는 정치요금인데 한전 탓만

전기요금 원가는 고정비와 변동비(연료비)로 구성된다. 현재 전기는 시간대별 수요에 맞춰 변동비가 가장 싼 원자력, 석탄, LNG, 유류부터 발전해서 공급한다. 그런데 SMP 제도는 매 시간 가장 나중에 가동한 발전기의 연료비를 그전부터 가동한 발전기에 똑같이 지급(경향신문 2월24일자 참고)한다. kWh당 변동비가 6원 수준인 원자력 발전에도 kWh당 290원인 LNG 단가를 지급해준다. 이러한 제도는 발전사업 민영화를 위해 2001년 정부가 도입했다. 많은 문제점이 있어 최초 도입한 영국도 폐지했는데 우리는 역대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 최근에 LNG 가격 급등으로 문제가 심각해졌음에도 정부는 이러한 제도를 폐지하지 않고 ‘SMP 상한제’를 도입해서 또 다른 분란을 야기하고 있다.

발전원가 인상의 두 번째 요인은 LNG 가격과 석탄 가격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전의 역할은 없다. LNG 가격은 한전 같은 대량 소비자가 국제시장에서 직접 구입하면 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국가스공사가 구매해서 한전에는 가정용보다 거의 2배나 더 비싸게 공급하고 있다. 가정용 LNG의 적자를 한전으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외국은 정반대다. 미국은 가정용이 발전용보다 2.7배나 비싸다. 이런 구조로 적자가 심화되는데 이게 한전의 책임인가?

다음으로 석탄은 한전이 100% 지분을 보유한 발전 5개 자회사에서 구입을 한다.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는 과거 통합구매보다 분할구매로 파워가 약해져서 더 비싸게 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발전 자회사는 한전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기재부의 공기업 평가 시 개별 평가를 받고 있다. 한전은 어떤 지배력도 행사를 못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석탄을 비싸게 사서 발전원가가 올라가도 자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가 없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가 한전의 책임인가?

원가 측면에서 문제는 또 있다. 한전은 전기요금을 책정할 때 ‘총괄 원가주의’로 하게 돼 있다. 이는 전기의 공급안정성을 확보해주기 위해 만든 정책이다. 전기요금 원가에는 한전이 발전부터 판매에 이르는 모든 원가와 장래 전기공급 안정을 위한 설비투자 재원까지 포함돼 있다. 전기는 한순간도 공급 차질이 있으면 안 되기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제도다. 이 제도의 장점으로는 안정 공급을 위한 재원을 미리미리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원가절감 유인 동기가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원가절감의 일부를 직원들에게 보상해주는 인센티브제 도입도 논의되었으나 그 결정은 한전의 몫이 아니다.

정치가 ‘순환’ 단절 시켜선 안 돼

판매가격을 동결시켜 놓고 원가 구조도 한전의 개입이 불가능한데 책임은 한전이 지라고 한다. 겁박은 한전이 하는 게 아니라 정작 책임져야 할 여당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전에 요구하는 게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다. 있는 자산 팔고 임금 삭감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한전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팔 수 있는 자산은 거의 다 팔거나 예정돼 있다. 가지고 있는 자산 중 YTN 지분 같은 출자 자산은 애초부터 정부의 지시로 샀고, 판매 권한도 정부(기재부)에 있지 한전에 없다. 남은 건 임금 삭감이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급여에다가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해서 인재도 들어오지 않는데, 임금마저 깎는다면 앞으로 한전은 누가 키울지 걱정이다.

임금 삭감을 지시한 사람 중에 ‘월급이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궁금하다. 한전이 잘못한 게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구당 정전시간 연간 8.9분(미국 47.3분, 독일 10.7분)과 송배전 손실률 3.5%(미국 5.1%, 독일 6.8%)를 '울트라 세계 최고'로 못한 것밖에 없다. 책임을 묻는 것도 제대로 물을 곳에 물어야 한다. 쌓이는 한전 부담은 채권시장·물가·재정 부담으로 조삼모사 될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준다고 한전을 뒤틀고 사장을 바꾼다고 근본 처방이 되는 것이 아니다.

ESG 경영은 인과관계가 순리적으로 순환되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가 순환을 억지로 단절 시켜선 안 된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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