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은 ‘맛’이 아니라 질감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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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K-급식'을 알리는 TV 프로그램 '한국인의 식판'에 나온 장면이다.
옥스퍼드 대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던 중 한 학생이 '회오리감자'가 맛이 없다고 실망했다.
많은 학생이 특이한 모양에 호기심을 보였고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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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진 옮김 /따비 /3만3000원
- 음식의 맛·향·질감 어우러질때
- 우리 입이 느끼는 ‘마우스필’
- 과학자와 요리사가 의기투합
- 재료·조리·경험 매커니즘 설명
외국에서 ‘K-급식’을 알리는 TV 프로그램 ‘한국인의 식판’에 나온 장면이다. 옥스퍼드 대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던 중 한 학생이 ‘회오리감자’가 맛이 없다고 실망했다. 감자를 회오리 형태로 만들어 튀겨낸 다음 양파 시즈닝 파우더를 뿌린 음식이다. 많은 학생이 특이한 모양에 호기심을 보였고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왜 맛이 없다고 했을까. 급식을 늦게 받은 학생들은 이미 눅눅해진 회오리감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형태도 조금 무너져 있었다. 당연히 맛이 없을 것이다. 자고로 튀김은 무조건 ‘겉바속촉’ 아닌가. 안타까웠다.
뱃속에 들어가 소화되면 다 같은 영양분이라고 쉽게 말하지 말자. 맛있는 건 맛있는 거고 아닌 건 아닌 거다.
‘마우스필(mouthfeel)’은 과학자와 요리사가 함께 쓴, ‘먹는 즐거움’에 대한 과학 탐구다. 저자 올레 G. 모우리트센은 과학자. 또 한 명의 저자 클라우스 스튀르베크는 요리사이다. 책의 부제는 ‘음식의 맛과 향과 질감이 어우러질 때 우리 입이 느끼는 것’이다. 마우스필이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 준다. 약사이며 푸드라이터로 활동하는 정재훈의 추천사를 읽어보면 더 잘 이해된다.
“햄버거를 먹는 것과 햄버거를 갈아서 곤죽처럼 만들어서 먹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영양은 그대로이고 풍미 물질도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후자는 전혀 즐겁지 않다. 왜 그런가? 입안에서 뇌로 전달되는 ‘마우스필’이 다르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비슷한 생크림 케이크여도, 유크림으로 만든 것과 식물성 크림으로 만든 것은 혀에 휘감기는 느낌과 목구멍에서 치고 올라오는 향에서 차이가 크다. 먹는 즐거움은 음식이 맛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음식을 평가할 때 쓰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 바삭하다, 아삭하다, 끈적거린다, 부드럽다, 폭신하다, 포슬하다, 질겅거린다, 말랑하다. 쫀득하다, 쫄깃거린다, 질기다… 표현력과 어휘력이 풍부한 사람은 더 많은 단어를 내놓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신맛 단맛 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 등으로 음식 맛을 표현할 때보다 위의 단어를 더 많이 쓴다. 우리가 음식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많은 단어는 맛이나 향보다 음식이 ‘입안’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묘사한다. 음식의 질감과 관련이 있는 이런 느낌이 바로 ‘마우스필’이다.
책에서는 이렇게도 설명한다. “우리가 어떤 음식의 맛이 나쁘다며 불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보다는, 수플레가 무너졌고, 고기는 너무 질기며, 프렌치프라이는 눅눅해졌고, 빵은 말랐으며, 커피는 미지근하고, 겨자는 쏘는 맛이 없다는 둥의 얘기를 한다. 또는, 그저 간단하게 ‘맛없다’고 말한다.”
알고 보면 마우스필은 굉장한 세계다. 우리가 원하는 완벽한 식사는 음식재료의 특성과 조리 과정에 작용하는 과학에 관한 이해, 이를 구현해 낼 경험이 결합해야만 가능하다. 과학자와 요리사가 의기투합해 책을 쓴 이유가 거기 있었다. 책 전반부는 음식을 먹을 때 우리 몸의 감각이 작동하는 메커니즘, 재료와 음식의 물적 토대에 관한 탐구다. 과학적 접근이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미처 몰랐던 음식세계가 열리는 느낌도 든다.
후반부는 과학의 내용이 실제 구현된 음식과 요리의 세계를 탐색한다. 다채로운 50가지 요리 레시피도 펼쳐진다. 그동안 먹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많은 음식이 떠오른다. 그 음식을 만든 분들도 고맙다. “오늘은 뭘 드실 겁니까? 당신의 마우스필을 열어줄 음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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