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여자 프로당구에 도전장 내민 ‘MZ세대’

강호철 스포츠부 선임기자 2023. 5.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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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마추어 1·2위 한지은·장가연
6월 개막하는 LPBA(여자 프로당구)에 도전장을 내민 한지은(왼쪽)과 장가연이 함께 큐를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들은 국내 아마추어 랭킹 1·2위로, 프로 무대에서도 정상을 노릴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둘 모두 1년 내에 우승하겠다는 목표로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오랜만이네.” “응, 언니는 어떻게 지냈어?”

서로 얼굴을 보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수다 떠는 모습이 또래 여성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큐를 잡으면 눈빛이 달라진다.

당구 스리쿠션 국내 아마추어 랭킹 1~2위 한지은(22)과 장가연(19). 6월 초 새 시즌을 시작하는 LPBA(여자프로당구)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무서운 아이들’이다. 어리다고 얕보면 오산. ‘여제’ 김가영(40),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33), 이미래(27) 등으로 대표되는 여자 프로당구계 지각변동을 예고할 만큼 잠재력을 지녔다.

한지은은 여자 국내 아마추어 랭킹 1위이자 세계연맹 랭킹 2위다. 18세로 주니어 시절인 201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대회에서 현재 세계 1위인 네덜란드 테레사 클롬펜하우어(40)를 꺾고 우승을 차지해 당구계를 놀라게 했다. 2021년 당구월드컵에선 세계 최고 기량을 지닌 남자 선수를 거의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가면서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장가연은 국내 대회에서 준우승만 거듭하다가 지난해 당구연맹회장배 첫 우승으로 징크스를 깼다. 올해 국토정중앙배 우승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랭킹은 국내 2위이자 세계 10위. 고1 때부터 개인 유튜브(장가연의 당구노리) 활동을 통해 동호인 사이에선 유명 인사였다.

25일 서울 강남구 제이에스타워 내 당구장에서 여자 프로당구의 무서운 신예 한지은 선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04.25 /남강호 기자
25일 서울 강남구 제이에스타워 내 당구장에서 여자 프로당구의 무서운 신예 장가연 선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04.25 /남강호 기자

둘 다 초등학교 때 당구광인 아버지 손에 이끌려 우연히 큐를 잡은 뒤 그 매력에 빠져 스리쿠션 당구를 인생 길로 삼았다. 한지은은 17살이던 2017년 미국 대회에 출전한 뒤 아예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당구 연습에 매달렸다.

구미에 사는 장가연 역시 중학교를 마친 뒤 당구 연습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방송통신고에 진학했고, 지금은 구미대 스마트경영학과에 다니면서 수원에 올라와 프로 입문을 준비 중이다.

여자 당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주역으로 꼽히는 둘이지만 승부에서는 양보 없다. 아마추어 시절 맞대결 성적은 한지은이 3승1패로 앞선다. 둘 다 서로 맞대결을 ‘인생 경기’로 뽑을 정도로 치열했다.

여자 당구 지각변동 예고하는 MZ세대

“가연이하고 맞붙은 올 3월 아시아선수권 결승요. 그날따라 너무 공이 잘 맞아 15이닝 만에 30점을 쳤어요. 애버리지 2(1이닝당 평균 2개 쿠션 성공)로 경기한 것은 그때가 유일했어요.”(한지은)

“2022년 당구연맹회장배 결승에서 지은 언니를 처음으로 꺾고 우승했어요. 9점 차로 지고 있었는데 신경 쓰지 말고 내 공만 치자 생각하면서 1, 2점씩 따라붙어 결국 25대24로 이겼어요. 그런데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지은 언니에게 크게 졌을 땐 기분이 좀 안 좋아요. 언니가 잘 쳐서 진 거라 어쩔 수 없죠, 뭐.”(장가연)

당구대를 앞두곤 치열한 승부를 벌이던 둘은 그동안 경기장에서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다가 올 1월 원주 국제대회에 함께 출전하면서 식사도 같이 하고 휴대전화로 안부도 주고받을 만큼 친해졌다.

“제가 원래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 가연이가 먼저 다가오더라고요. 2주가량 숙소 생활을 함께 하면서 친해졌어요 원래 착한 사람끼리는 금방 어울린다잖아요? 호호.”(한지은)

“언니랑 친해지고 싶었어요. 마침 구두를 안 가져가서 언니 거 빌려 대회에 출전했어요. 언니가 조언도 많이 해주고, 배울 점이 너무 많아요.”(장가연)

서로가 생각하는 상대 장점은? 장가연은 “지은 언니는 위기에서도 전혀 표정이 읽히지 않는 포커페이스를 지녔고, 쉬운 공이라도 돌다리 건너듯 신중하게 치는 모습이 부럽다”고 하자, 한지은은 “가연이는 정말 씩씩하고 시원스럽게 친다. 경기할 때도 절대로 ‘쫄지’ 않는다”고 했다.

프로 무대는 만만치 않다. 2021년 아마 최강으로 군림하던 김진아(31), 한지은과 동갑으로 먼저 프로에 뛰어든 용현지(22)도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LPBA리그는 아마와는 달리 세트제, 서바이벌 경쟁 등 이변이 많이 연출된다. 대회 수도 많고 일정도 빡빡해 강한 체력도 필수다. 아마 시절 사용하던 공과는 특성이 다른 LPBA 공에도 적응해야 한다. 그래도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1년 내 우승을 목표로 삼고 아침부터 밤까지 큐를 잡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 어깨가 좀 안 좋아서 필라테스로 재활과 근력운동을 겸하고 있어요. 긴장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한지은)

“하루에 30분씩 근력운동을 하고 있어요. 우승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 지은 언니보다 잘 쳐야죠.”(장가연)

인터뷰가 끝나고 큐를 놓자 둘은 다시 영락없는 MZ(밀레니얼Z) 세대 발랄함을 발산했다. “사진 열심히 찍어주셔서 너무 재밌었어요. 이제 진짜 프로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여자 프로당구의 무서운 신예 한지은(왼쪽), 장가연 선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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