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신드롬’을 아시나요[생사의 사이에서/심상덕]
심상덕 ‘진오비산부인과의원’ 원장 2023. 5.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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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은 5월 5일이다.
그럼 노인의 날은 며칠일까? 아니 있기는 한 것일까?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녹음이 우거진 5월에 내가 청춘 예찬을 말하는 대신 노년 예찬을 말하는 것은 따스할 때는 추운 날을, 건강할 때는 아플 때를, 앉아 있는 사람은 서 있는 사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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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은 5월 5일이다. 그럼 노인의 날은 며칠일까? 아니 있기는 한 것일까? 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노인의 날은 10월 2일이다. 외국은 10월 1일이 노인의 날인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국군의 날과 겹쳐서 10월 2일로 정했다고 한다.
의과대학 1학년 때 처음 배우는 과목은 해부학이고, 해부학 실습은 4월과 5월에 한다. 라일락이 많이 피는 계절이다. 모교 의과대학 교정에는 라일락 나무가 많았다. 봄이면 라일락 꽃을 보면서 등교를 하고 라일락 향기를 맡으면서 하교를 했다. 해부학은 200개가 넘는 뼈의 이름을 모두 암기해야 하는 힘든 과목이라 봄을 제대로 즐길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을 괴롭힌 것은 뼈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시신의 혈관을 찾고 뼈를 바르던 손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드는 일이 정말 괴로웠다. 해부학 실습이 주는 고통과 회의를 나는 비교적 큰 후유증 없이 넘겼지만 일부 학생들은 그런 고민을 넘어서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기도 했다. 10% 정도의 학생들이 이 시기를 기점으로 자퇴하거나 다른 학과로 옮겨 갔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라일락 신드롬’이라고 불렀다.
이름이야 무엇으로 붙이든 라일락 신드롬은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한 번은 견디고 넘어가야 하는 숙명과도 같다. 삶에 대한 회의,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인생무상…. 그 모두를 뭉뚱그려 놓은 복잡한 감정을 이겨 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며 하루하루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삶이다. 삶은 항상 죽음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둘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진실을 매번 직면해야 한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로 30년째 새 생명의 탄생을 도우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 날 돌연 운명의 여신이 내게서 미소를 거둘 수 있고, 그 순간 악몽이 시작되리란 사실도 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1년 중에서 5월의 대척점에 있는 달은 11월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달이다. 꽃은 피지 않고 파릇한 잎도 없다. 어떤 이는 끝이 있는 짧은 순간이기 때문에 봄과 젊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알차게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5월의 꽃도 아름답지만 11월의 낙엽도 추한 것이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쩌면 낙엽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녹음이 우거진 5월에 내가 청춘 예찬을 말하는 대신 노년 예찬을 말하는 것은 따스할 때는 추운 날을, 건강할 때는 아플 때를, 앉아 있는 사람은 서 있는 사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세상이 좀 더 살 만한 곳이 됐으면 한다. 모든 계절이 항상 봄일 수는 없으니까.
의과대학 1학년 때 처음 배우는 과목은 해부학이고, 해부학 실습은 4월과 5월에 한다. 라일락이 많이 피는 계절이다. 모교 의과대학 교정에는 라일락 나무가 많았다. 봄이면 라일락 꽃을 보면서 등교를 하고 라일락 향기를 맡으면서 하교를 했다. 해부학은 200개가 넘는 뼈의 이름을 모두 암기해야 하는 힘든 과목이라 봄을 제대로 즐길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을 괴롭힌 것은 뼈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시신의 혈관을 찾고 뼈를 바르던 손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드는 일이 정말 괴로웠다. 해부학 실습이 주는 고통과 회의를 나는 비교적 큰 후유증 없이 넘겼지만 일부 학생들은 그런 고민을 넘어서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기도 했다. 10% 정도의 학생들이 이 시기를 기점으로 자퇴하거나 다른 학과로 옮겨 갔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라일락 신드롬’이라고 불렀다.
이름이야 무엇으로 붙이든 라일락 신드롬은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한 번은 견디고 넘어가야 하는 숙명과도 같다. 삶에 대한 회의,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인생무상…. 그 모두를 뭉뚱그려 놓은 복잡한 감정을 이겨 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며 하루하루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삶이다. 삶은 항상 죽음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둘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진실을 매번 직면해야 한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로 30년째 새 생명의 탄생을 도우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 날 돌연 운명의 여신이 내게서 미소를 거둘 수 있고, 그 순간 악몽이 시작되리란 사실도 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1년 중에서 5월의 대척점에 있는 달은 11월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달이다. 꽃은 피지 않고 파릇한 잎도 없다. 어떤 이는 끝이 있는 짧은 순간이기 때문에 봄과 젊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알차게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5월의 꽃도 아름답지만 11월의 낙엽도 추한 것이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쩌면 낙엽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녹음이 우거진 5월에 내가 청춘 예찬을 말하는 대신 노년 예찬을 말하는 것은 따스할 때는 추운 날을, 건강할 때는 아플 때를, 앉아 있는 사람은 서 있는 사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세상이 좀 더 살 만한 곳이 됐으면 한다. 모든 계절이 항상 봄일 수는 없으니까.
심상덕 ‘진오비산부인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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