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박원순, 여자 노회찬’ 드라마가 별로인 이유[광화문·뷰]

박은주 부국장 겸 에디터 2023. 5. 5.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좌파는 정의롭다’는 맹목… 한국 영상물까지 번져
‘게으른 좌파 콘텐츠’ 이젠 한계… ‘K운동권 콘텐츠’ 시장에 맡겨야

최근에 본 드라마 ‘퀸 메이커’의 줄거리는 이렇다. 홍보 전문가인 재벌그룹 임원(김희애)이 성폭력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 죽게 만든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사직 후 인권변호사 오경숙(문소리)과 손잡는다. 오경숙은 서울시장이 되고, 재벌 면세점을 민관기업으로 전환해 수익금을 시민에게 나눠준다.

시청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푸하하”. 주인공 오경숙은 인권변호사 박원순, 노동운동가 노회찬, 여성 운동가 윤미향의 ‘순수’만을 뭉쳐 놓은 인물이다. ‘진정성’ ‘사람 사는 세상’ ‘철의 노동자’ 대충 이런 386 운동권 정서가 전편에 흐른다. 드라마에는 여성단체 회원이 “오경숙이 기부금을 횡령했다”고 폭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벌가 보수당 후보에게 매수당한 것이다. 오경숙은 그 회원마저 감싸 안는다. 오경숙은 그러니까, 살아있는 부처이자, 재림한 성모 마리아다. 드라마는 거짓 선동이었던 나경원 의원 관련 의혹은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면서, 윤미향의 횡령 혐의는 ‘누명’이라고 항변해 준다.

인권변호사 오경숙(문소리)이 기업 출신 황도희(김희애)와 손잡고 서울시장이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 '퀸 메이커'. /넷플릭스

당연하게도 ‘오징어게임’이나 ‘더 글로리’ 같은 히트작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그렇다고 망한 것도 아니다. 한국 영상물을 기다리는 팬들이 전 세계에 적잖다. 국내에서도 응원하는 평이 나온다. 이런 맥락이다. “진부해 보이지만, 여성이 재벌 회장, 서울시장, 전략가로 나오는 드라마라 재미있게 보려고 노력했다” “(여성의 결속을 다룬) 워맨스 드라마는 무조건 지지해줘야” “윤미향 의원님이 당하던 기억이 나서 부들부들. 매수당한 회원을 보니 이ΟΟ 할머니가 떠오름.”

그렇다. 상투(클리셰)로 십자수를 놓아도, 무늬가 페미니즘이면 일부에서 지지를 얻는다. 전도연 주연 영화 ‘길복순’도 ‘여성 킬러’가 나온다는 이유로 완성도에 비해 좋은 입소문을 얻었다. 이런 경향은 전 세계적인데, 반대쪽에서는 ‘페미 코인’(페미니즘 시각을 입히면 돈이 된다는 뜻)이라고 조롱도 한다.

‘퀸 메이커’는 ‘페미코인’ 덕에 폭망을 면했지만, ‘좌파 코인’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졌다. ‘좌파는 정의롭다’. 초등생도 안 믿는 이 ‘맹신’은 현실의 진보 세력을 퇴행시킬 뿐 아니라, 문화 산업에도 독소가 되어 버렸다.

한국 좌파는 강한데, 한국 좌파나 주장을 담은 콘텐츠는 점점 ‘동어반복’이 되고 있다. 원인 중 하나를 ‘쉬운 돈’으로 본다. 세금으로 아이돌그룹을 지원한 적은 없지만, 좌우정권 할 것 없이 세금을 퍼부어 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마케팅과 해외 진출까지 지원했다. 이게 밑천이 되어 박찬욱 봉준호가 세계에 알려졌지만, 동시에 ‘게으른 좌파 콘텐츠’가 양산됐다. 곡식을 절구에 빻으면 사람도 먹고 새도 먹는 법이지만, 그 양이 너무 많았다. 관객이 아닌 진영에 봉사하는 영화가 너무 쉽게, 많이 만들어져왔다.

‘K-푸드’ ‘K-화장품’처럼 ‘K-운동권’도 한국의 특산품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운동한다’는 말로 평생 대접받고 사는 나라가 세계에 얼마나 될까. 한국인은 ‘정치병’이 심하다고도 한다. 좋게 보면, 정치 민감도가 높은 것이다.

미국을 제외하고, 넷플릭스가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는 나라가 한국, 인도, 캐나다이다. 넷플릭스 CEO는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한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퀸 메이커’도 넷플릭스 자금으로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정치적 극단화가 가속되는 시점이라 ‘K-운동권’ ‘한국식 정치병’ 콘텐츠는 매력적인 장르가 될 수도 있겠다. 잘됐다. 이런 소재와 주제를 세련되게 다듬어, 계속 해외 OTT의 돈을 얻어냈으면 좋겠다. 대신 세금과 공적자금으로 ‘영상물’ 제작을 지원하는 ‘국가지원 프로젝트’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