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사 對 이용사, 한우 對 한돈… 여야 모두 편가르기 입법

박수찬 기자 2023. 5.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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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 노리고 법안 남발 “정치, 퇴보 넘어 저질화”

2017년 12월 국회 정문.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삭발을 하며 “무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주는 조항을 삭제한 세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본회의장을 찾은 대한세무사협회 회장은 기자들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김현(오른쪽)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변협 간부들이 지난 2017년 12월 8일 오후 국회 앞에서‘세무사법 개정안’본회의 상정에 반대하며 삭발식을 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왼쪽 사진). 이 법이 이날 본회의에서 가결되자 본회의장 방청석에 앉아 있던 대한세무사회 관계자들이 악수를 나누는 등 자축하고 있다(오른쪽 사진)./이덕훈 기자

2003년 국회에 처음 제출된 세무사법은 10년 넘게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다. 여야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무사를 대변해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의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변호사 출신 의원들 사이의 대립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법이 통과됐지만 일부 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고, 지금도 변호사와 세무사 양측 모두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갈등을 조정해야 할 국회가 갈등을 조장하고, 불완전한 법을 만든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편 가르기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여야가 따로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원청 업체를 ‘사용자’에 포함시키고, 파업 피해에 대해 기업의 손해배상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내용으로 경영계는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노총 등 강성 노조만 이득을 보는, 노조 청부 입법”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야당은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여당 의원이 제출한 법안 가운데서도 특정 이익집단을 대표했다가 반발을 사는 경우가 있다. 미용사 출신인 국민의힘 최영희(비례대표) 의원이 발의한 ‘미용사법’은 국가가 미용사 양성 등 미용 산업을 진흥하고, 미용사 단체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국피부미용사회중앙회, 한국이용사회중앙회는 반대 입장을 밝혔고,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는 “미용업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규정해 유사 의료 행위를 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한우산업발전법은 한우 농가의 이익을 대변한 법이다. 현행 축산법에서 한우 지원을 떼 지원 근거를 만들고, 한우 농가에 도축·출하 장려금을 주는 내용이다. 출하 장려금으로 연간 100억원 이상이 투입된다. 이에 대해 한돈 농가들은 “한돈 산업을 위한 별도의 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는 각 정당이 총선을 앞두고 법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진통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20년 총선을 석 달여 앞두고 국회를 통과한 ‘유치원 3법’이 대표적이다. 2018년 사립 유치원 비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민주당은 사립 유치원을 대상으로 국가 회계관리 시스템 사용을 의무화하고 설립자의 원장 겸임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사립 유치원의 개인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국공립 유치원과 사립 유치원을 갈라치기하고 사립 유치원을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악마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유총이 유치원 개학을 연기하며 국민들도 피해를 봤다.

국민 대다수와 이익단체를 편 가른 경우도 있다. 2020년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통과된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발의하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찬성했다. 김종석 규제개혁위원장은 지난해 취임 이후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25만명에 달하는 택시업계의 압력에 굴복해 미래산업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라며 “이 법으로 심야 택시 대란이 일어나며 국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마케팅 용어를 빌리자면 여야 모두 ‘시장 세분화’와 ‘표적 시장 선정’을 통해 표를 얻을 수 있는 대상을 나누고 쪼개고 거기에 정책을 맞추고 있다”며 “국가에 대한 고민 없이 모든 것을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만 접근하면서 정치가 퇴보를 넘어서 저질화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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