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촉발한 ‘갈등의 도미노’...巨野가 통과시킨 간호법에 대혼란

최원국 기자 2023. 5.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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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계 전체가 혼란 속으로

거대 야당이 단독 처리한 간호법 제정을 놓고 보건의료계의 내부 갈등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처음엔 의사와 간호사가 충돌했다. 그런데 지금은 간호사와 업무가 유사한 간호조무사들이 “간호법 반대”를 외치고 있다. 간호조무사 자격만 ‘고졸’로 제한한 것은 간호사는 위, 조무사는 아래라는 위계를 굳히는 조항인 만큼 ‘고졸 이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를 통과한 간호사법에 반대하며 9일 째 국회앞에서 단식농성중인 권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왼쪽),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지난 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통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덕훈 기자. 뉴스1

그러자 간호조무사를 양성하는 특성화고와 간호 학원 등은 “‘고졸 이상’으로 개정하면 특성화고와 학원이 고사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고졸’ 유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간호조무사계 내부 갈등도 벌어진 것이다. 반면 한의사협회는 “간호법 찬성”이라며 파업을 예고한 의사협회를 겨냥했다. 간호법을 일방 처리한 정치가 쏘아 올린 ‘갈등 도미노’에 국민 생명과 직결된 보건의료계 전체가 혼돈에 빠지는 양상이다. 정치가 사회 갈등의 조정과 중재는커녕 기존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전국 간호교육교장협의회의 정연 회장은 4일 본지 통화에서 “간호조무사 학력 규정을 대졸로 확대하면 고졸, 대졸 여부에 따라 임금과 근로 조건 등에서 차별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전문대에서 배우는 내용과 특성화고 교육과정이 비슷한 상황에서 학력에 따른 차별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나마 취업이 잘되는 (고교) 간호과가 흔들리면 특성화고 체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특성화고 간호과 교사들은 국회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 앞에서 밤샘 농성도 벌였다. 김희영 고등학교간호교육협회장은 “학생들 미래를 위해 수업을 마치고 퇴근 후 1인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간호조무사를 양성하는 특성화고는 전국 59곳으로 약 8000명이 재학 중이다. 간호 학원도 가세했다. 공화숙 한국간호학원협회장은 “간호 학원 1년 과정으로 취득할 수 있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2년제 전문대를 다니는 것은 교육 낭비”라며 “대졸 조무사가 보편화하면 전국의 간호 학원 600여 곳은 존폐 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사들이 간호조무사 교육자라는 가면을 쓰고 조무사의 ‘고졸’ 제한 폐지를 반대하는 건 기만 행위”라며 “우리에게 영원히 고졸, 학원 출신으로 남으라고 하는 거냐”고 했다. 특성화고 교사 대부분이 간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간호협회 편을 든다는 주장이다.

응급구조사들도 이번 갈등에 휘말렸다. 응급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구조사들은 “간호법으로 ‘응급간호사’가 등장해 응급구조사 업무를 하는 상황을 우려한다”며 부분 파업에 나섰다. 간호사가 업무 범위를 넓히면 응급구조사의 일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전국 응급구조사는 3만7000여 명이다.

간호사 외에 간호법에 찬성하는 직역도 등장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날 “간호법 제정 필요성의 근본적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간호사가 기존 의료법에서 분리된 간호법을 원하는 것처럼 한의사도 별도의 ‘한의사법’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한의사협회는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한다면 한의사들은 최선을 다해 의료 공백에 대처하겠다”고 했다. 해묵은 의사·한의사 간 싸움도 벌어진 것이다.

보건의료계 관련 법은 일자리와 수입 등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직역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을 고수하고 있다. 김영경 간호협회장은 “국민에게 해를 가하는 집단 진료 거부에 대해 정부가 올바르게 대처하는지 국민의 입장에서 똑바로 지켜보겠다”며 “(보건의료계) 갈등을 빌미로 간호법 반대를 추진한다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묻고 심판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자격증 기준으로 의사는 11만5000여 명, 한의사는 2만4000명, 간호사는 40만명, 간호조무사는 72만5000여 명이다. 현업 종사자는 의사 10만명, 한의사 2만명, 간호사 21만6000여 명, 간호조무사 25만6000여 명 등이다.

정치가 보건의료계의 갈등을 촉발한 사례는 코로나가 창궐할 때도 있었다. 2020년 9월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온라인에 “(코로나 현장에서) 의료진이라고 표현되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냐”고도 했다. 코로나와 전쟁에서 고생하는 건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방역 최전선에 나선 의사와 간호사 숫자는 비슷했다. 11만5000명의 의사 표보다는 40만명의 간호사 표를 의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간호법 제정을 밀어붙인 것도 ‘갈등 조정’보다는 ‘표 계산’을 먼저 한 결과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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