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성급한 개방?' 환영과 우려 교차…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첫날 갔더니
120년 만에 시민에게 돌아온 용산 미군 기지
발암 물질 검출된 부지 vs 한국의 센트럴파크?
[더팩트ㅣ용산=설상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시대' 1주년을 맞아 주한미군 기지 일부가 4일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금단의 땅'으로 묶여 있던 부지가 시민들에게 전격 개방된 건 120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 마련 취지에 따라 이 곳을 '용산어린이정원'으로 명명했다.
이날 2시 신용산역 1번 출구에서 200m 떨어진 주 출입구(14 GATE) 문이 열리면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입장했다. 역사의 아픔을 딛고 반환된 어린이정원을 향한 시민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금일 방문 예약은 이미 모두 마무리된 상태로, 오는 9일까지 예약이 모두 매진됐다. 각 언론사 취재진은 오후 1시 50분경부터 주 출입구로 먼저 입장해 종합안내센터에서 신원 확인 절차를 밟았다. 어린이정원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는 총 2곳. 또 다른 출입구(13 GATE)는 어린이정원 내 위치한 스포츠필드에서 이촌역 국립중앙박물관 방향 사이에 위치했다.
시민들은 어린이정원에서 용산 기지 243만㎡(약74만 평) 중 개방된 30만㎡(9만 평)을 누릴 수 있다. 대통령실과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는 광활한 규모다. 시민들은 우리 품에 돌아온 부지 곳곳을 누리며 도심 속 자연 분위기를 한껏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인 만큼,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았다. 데이트 코스로 온 여러 연인들도 눈에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50대 여성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넓은 공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대통령실과 남산타워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라며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반환돼서 기쁘고, 앞으로도 미래 세대들이 이 공간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다만 대통령실과 인접한 곳으로, 특별 경호 구역으로 지정돼 경호가 삼엄했다. 이날 투입된 경찰 인력과 경호처 관계자들만 수십 명에 달해 보였다. 입장을 위해서는 신분증 확인, 소지품 및 신체검사가 필수다. 어린이정원 내 촬영을 원할 경우 미리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종합안내센터에서 신원 절차 확인을 마무리한 후 나오면 미군 장군들이 거주하던 빨간 지붕의 단층 단독주택 단지를 볼 수 있다. 그중 리모델링된 일부 주택들이 문화·휴식 공간 등으로 거듭났다. 용산의 고층 빌딩 속 오래된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미군기지의 특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어린이정원 내 메인 장소인 잔디마당까지는 홍보관 용선서가(도서관) 전시관 이음마당 이벤트 하우스 카페 등이 위치했다. 어린이정원 동쪽에는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필드(축구·야구장)이 마련됐다. 개방을 위해 리모델링을 모두 마무리 한 상태다.
홍보관에서는 '용산 공원 부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주제로 3D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방문객 사진과 디지털 방명록을 남길 수 있는 공간도 보였다. '우리 땅, 우리 공원, 우리 품으로' , '빠른 시일 내에 국민 품으로! 이 마음뿐~', '멋진 우리 땅' 등 여러 방명록이 눈에 들어왔다. '브이'(V)자를 그린 한 여자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모녀 사진의 방명록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용산서가는 관람객의 휴식과 독서를 위해 마련된 장소다. 노트북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으며, 트인 유리 통창을 통해 장군 숙소와 용산 시티뷰를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아이들을 위한 페이스페인팅, 화분 만들기 체험, 캐릭터 전시, 피에로 풍선아트 등 여러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준비됐다. 키다리 피에로 두 명이 이벤트 행사를 앞두고 취재진에게 환영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어린이정원 내 주요 테마 시설을 거쳐 대통령실 방향으로 따라 걸어가면 잔디마당과 가로수길을 걸을 수 있다. 가로수길에는 플라타너스 30주가 길 따라 양쪽으로 아름답게 우거져 있으며, 앞으로 광활한 잔디마당(약 7만 제곱미터)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잔디마당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린 시간은 15~20분가량. 최고 기온 26도를 기록한 무더운 날씨였지만, 그늘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다행이었다.
잔디는 고르게 다시 깔린 상태로, 개방을 위해 대토 및 평탄화 작업을 모두 마친 상태였다. 국토부에서 공원 조성 및 관리를 위탁받은 LH주택공사가 2월부터 4개월간 조경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잔디마당에서 하늘바라기길, 들꽃산책로 등을 따라 걸어가면 전망언덕이 나온다. 산책로에서는 수수꽃다리, 한라백당, 불두화, 루피너스, 수국 등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100여 종의 조경화를 즐길 수 있다. 특히 경관 연출을 위한 이끼정원이 눈에 띄었다. 강원도에서 직접 들여온 것으로, 미스트 분사 시스템도 설치됐다.
전망언덕에서는 대통령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대통령 내외의 기념식수 역시 이곳에 위치했다. 경사진 전망언덕 인근에는 총 4가지 컨셉의 전망대가 있다. 소통의대(대통령실 방향) 미래의대(신용산역 방향) 문화의대(국립중앙박문관 방향) 생태의대(남산 타워 방향) 등이다. 소통의대는 대통령실 방향을 바라보는 전망대로 대통령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대통령실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로 다가가자, 경호처 관계자는 "접근 불가"라며 곧바로 기자를 돌려보냈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한남동 공관으로 출퇴근을 할 때 이용하는 입구"라며 "벤츠, 캐딜락 등 자동차 7~8대가 함께 움직인다"라고 귀띔했다.
아직 반환되지 않은 미군 기지가 보여 아쉬움도 남았다. 부 출입구에서 동쪽 방향에 위치한 미군기지는 막혀 있어 출입이 불가했다. 드래곤힐 호텔 등이 철조망 너머로 보였다. 미군 기지와 연결돼 있어 철수하지 못한 전봇대 전선 라인은 어린이정원 내 조망을 해쳤다.
어린이정원 개방을 두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가로수길 앞에서 만난 최인철(64) 씨는 취재진에 "어느 사안이든 반대는 있기 마련이고, 공원을 개방한 건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우리나라에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낀다. 미래 세대를 위해 관광 코스로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어린이정원 밖에서 만난 한 30대 여성은 "바로 앞에 거주하고 있는데, (발암 물질) 관련해 듣긴 했다"며 "공원이 개방된 건 환영할 일이지만, 따로 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중금속과 발암물질 등이 검출된 어린이정원을 개방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어린이정원 인근에서는 녹색연합 등이 주최한 어린이정원 개방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단체는 "해당 부지는 환경부의 환경조사 및 위해성 평가 결과 석유계총탄화수소, 납, 비소, 수은, 크슬렌 등 발암물질과 독성물질이 공원으로서의 기준을 크게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흙과 잔디로 덮은 채 어린이와 시민들에게 개방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기존 토양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15cm 이상 흙을 덮거나 잔디를 심는 등 추가 안전조치를 시행했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2022년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은 오염토양 위해성 평가 용역을 실시했으나, 공개되지 못한 상태다. 오염정화 책임과 관련해 미군과 후속 협상이 남아있는 만큼 공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어린이정원 관계자는 취재진에 "독성 물질 등 발암물질 수치가 높은 곳은 개방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snow@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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