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대로, 느끼는 대로’ 자유로운 감상인 앞에 ‘어려운 예술’은 없다[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영국 태생의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1928~1999)은 긴 경력을 보았을 때 남긴 작품이 많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킬러의 키스>(1955)와 같은 필름 누아르(film noir·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차분한 흑백 영상으로 되어있는 냉소적인 분위기의 할리우드산 범죄 영화 장르), <스파르타쿠스>(1960) 같은 고예산 스펙터클, 그리고 러시아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가 쓴 동명의 1955년 소설을 화면으로 옮긴 <롤리타>(1962) 같은 문제작 등 거의 모든 작품이 상업적으로, 예술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대표적인 ‘과작(寡作)의 명장(名匠)’으로 불리게 된다.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달 표면 ‘모노리스’ 탐사 장면에
리게티의 곡 ‘영원한 빛’ 쓰여
경외감 일으키는 명장면 연출
그중 무엇보다도 그를 현대 과학서사 영화(SF)의 최고봉에 올리게 되는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1968년에 개봉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이다. 작가이자 미래주의자인 아서 C 클라크(1917~2008)의 원작을 화면으로 옮긴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주 먼 옛날 원시시대의 인류(아직은 유인원의 모습을 하고 있는)와, 지구와 달 사이에 우주정거장을 설치하고 자유롭게 우주를 여행할 수 있게 된 멋진 2001년의 인류가 신비의 검은 ‘모노리스’(기둥)를 만나게 되면서 겪는 역사적이고 변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의 유인원은 모노리스를 접한 뒤 지능이 급격히 상승하여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되고, 2001년의 인류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우주적 종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가 인류 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는, 2001년 1월1일이 되자마자 우주복을 입고 우주로 날아가게 될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968년에 예측한 것과는 달리 아직 우리는 세계 최대의 억만장자가 아닌 이상 우주로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말이다.
어느날, 달의 크레이터(운석의 충돌로 만들어진 분화구 모양의 지형) ‘타이코(Tycho)’ 근처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검은 거대한 모노리스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인류는 곧바로 연구원들을 보내 조사한다. 실상은 무려 400만년 전부터 존재했던 이 불가사의한 존재를 향해 우주복을 입은 조사원들이 달 표면의 진공 속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장면에서, 큐브릭은 아무 소리도 전달될 수 없는 그 진공을 잊을 수 없는 한 음악으로 채워버린다. 그 음악은 바로 헝가리 태생의 죄르지 리게티(1923~2006)가 작곡한 ‘영원한 빛’, ‘룩스 아에테르나’(Lux Aeterna). 이 곡은 리게티의 ‘마이크로폴리포니’ 기법이 쓰인 대표적인 작품인데, 여러 멜로디 선이 동시에 연주되는 동안 소리가 주기적으로 한순간에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기법을 말한다. ‘룩스 아에테르나’에서는 악기 없이 사람의 목소리로만 된 선율들이 어떨 땐 각자의 리듬으로, 어떨 땐 한순간에 모여서 우리의 고막을 강하게 때리는 모습이 미지의 초월적인 존재를 만나러가는 인류의 긴장된 심장 박동 같기도 하고, 우리에게 감히 여기에 접근하지 말라고 하는 그 초월적인 존재들의 경고 같기도 하다. 끝내 그들의 목소리를 거슬러 연구원들이 모노리스에 다다르자 울려 퍼지는 고주파음에 머리가 터질 듯 괴로워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 역사상 제일 큰 경외감과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으로 꼽히기도 한다. 우주의 탄생인 빅뱅의 순간으로부터 존재해온 태고의 빛(비록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이 에너지를 ‘우주 배경 복사’라고 한다)인 ‘룩스 아에테르나’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영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도
주인공이 불안감 느끼는 장면에
또다시 활용된 리게티의 음악
그러나 작곡가의 실제 의도는
‘스탈린의 심장에 내리꽂는 칼날’
큐브릭과 리게티의 합작은 그 이후 30년이 지난 1999년에 다시 한번 이루어진다. 큐브릭이 “영화라는 예술에 내가 남기는 최고의 공헌”이라고 불렀고, 유작이 되었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오스트리아 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의 <꿈 이야기>가 원작인 이 영화는 나른하고 익숙한 현대의 일상으로부터 마음속의 은밀한 욕망이 가득한 곳으로 탈선해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갈망을 그리는 스릴러이다. 그리고 이 탈선의 설렘과 두려움이 주는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또 한 번 리게티의 음악이 사용된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어느날 기묘한 일을 목격하게 되고, 호기심에 이끌려 몰래 한 성 같은 저택에 잠입한 주인공. 이곳에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중세 비밀조직의 그것과 같은 의식을 행하고 있다. 몰래 들어온 이 침입자는 곧바로 발각되고, 의식이 거행되는 제단의 한가운데에 이끌려 가 심문을 받게 된다.
만약에 이 의식이 인간을 희생양으로 바치는 이교도의 모임이었다면 혹시 주인공의 욕망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닌지 긴장감이 흐른다. 만약에 그 주인공이 나만의 탈선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을 대표한다면, 미지의 신비로운 모노리스를 향해가는 장면에서처럼 우리는 여기에서도 숨을 죽이고서 알 수 없는 운명을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때 울려 퍼지는 음악은 리게티의 피아노 독주곡 ‘무지카 리케르카타’(Musica Ricercata) 2번. 총 열 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완전히 새로운 기반에서 만든다’는 뜻의 라틴어인 ‘엑스 니힐로’(ex nihilo)의 정신에 걸맞게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떠한 곡들과도 다른 느낌으로서, 긴장감 가득한 공기를 찢어버릴 듯한 연속된 타건이 우리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흉내낸다.
영화의 화면과 음악이 이렇게 환상적으로 완벽하게 어울리는 장면을 보고 나서 필자는 당연히 큐브릭과 리게티가 함께 작업했으니 그랬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큐브릭은 리게티의 허락을 받지 않고 그의 음악을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고, <아이즈 와이드 셧>이 만들어지던 1999년은 리케르카타가 작곡된 지 45년이나 지난 시점이었으니 큐브릭이 단지 자신의 영화적 상상력에 맞는 곡을 마음대로 골라 쓴 것이었다. 필자는 큐브릭의 작품들이 큐브릭과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던 리게티의 원래 의도와 어떠한 관계가 있었는지 항상 궁금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리게티의 답은 매우 뜻밖이었다. ‘리케르카타’의 찢는 듯한 타건 소리에 대해 리게티가 “그것은 내가 스탈린의 심장에 거푸 내리꽂는 칼날이었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욕망과 파국에 앞선 불안과 긴장을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해냈던 그 소리는 사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청소년기에 어머니를 제외한 온 가족을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로 잃어버린 비극을 겪은 뒤 곧바로 다시 스탈린에게 수천명이 잔인하게 죽은 고국으로부터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던 아픔을 표현한 것이었다.
큐브릭이 의도한 관객의 해석, 그리고 리게티가 의도한 작곡의 의미가 그렇게도 달랐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그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고민했던 것 같다. 우리 귀에 자주 들리는 고전음악(흔히 말하듯 ‘바흐-모차르트-베토벤-낭만파’로 이어지는)과는 달리 현대음악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은데 이런 식으로 만든 사람, 쓰는 사람, 듣는 사람이 다들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해하기 어려울 듯한 현대음악
만든 사람의 의도 꼭 알 필요 없어
남들이 뭐라든 내 방식대로 즐기자
만드는 것도 듣는 것도 자유니까
하지만 과연 반드시 만든 사람의 의도를 받아들여야만 그 음악을 올바로 듣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혹시 ‘어려운’ 현대음악이라고(또는 어떠한 예술형태이든)만 생각해 주눅드는 바람에 ‘들리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술 감상인의 자유와 권리를 놓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쉽게 풀리지 않는 이러한 고민으로 아주 긴 시간을 보낸 필자에게 2023년 4월 서울시향이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1957~ )와 함께 리게티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모노리스와 <아이즈 와이드 셧>의 비밀의식 장면에서 온몸을 휩쌌던 그 긴장감이 다시 생생히 떠오르면서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필자는 곧바로 표를 구했고, 며칠 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긴 시간 간직해온 물음에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온 공연장. 드디어 에마르의 타건과 함께 리게티의 음악이 시작되자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화면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동반되지 않아서 그의 음악을 즐길 수 없다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다행히도 23분 정도 되는 연주 시간 동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를 기대 이상의 황홀경으로 빨아들였다. 선두에 선 피아노를 따라 현악기, 관악기가 모두 타악기가 되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들은 줄을 켜는 만큼이나 쉴 새 없이 악기를 두들겨대고 있었고, 관악기들도 그에 맞추어 하늘로 쏘아지는 발사체들처럼 끝없는 짧은 소리들을 내며 호응하고 있었다. 익숙한 것과는 다른, 새로운 소리를 마음껏 내는 연주자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춤을 추는 내 자신의 모습에 왜 사람들이 리게티를 유려하고 부드러운 멜로디의 고전음악 전통과 구별되는 ‘현대음악’의 대표작가라고 부르는지 수긍하게 되었다. 특히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내 느낌대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소리의 향연에 더해 또 다른 한 층의 희열을 덧칠해주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신나하고 있던 나와는 분명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품격 있는 밤을 위해서인지 잘 차려입고 나의 앞줄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 둘이 그랬었는데, 연주되는 동안 꽤 고통스러웠는지 서로를 보며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전화기를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심지어 가방에서 음료수를 꺼내 마시며 끝나는 순간까지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황홀했던 23분의 연주가 악단의 강렬한 마지막 사자후와 함께 끝나는 순간 내가 “우와!”하면서 소리를 지르자 고개를 돌려 나에게 ‘저게 정말 좋았단 말이야?’하는 듯한 어리둥절해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 또한 눈빛으로만 그들에게 ‘응, 정말 좋았어’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지만, 큐브릭 작품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해 그 음악이 비로소 이해된 이 순간까지의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막을 내리자 이 시간을 잊고 싶은 듯 누구보다 빨리 공연장을 벗어난 그분들에게 해줄 기회는 없었지만, 이 자리에서 독자분들께는 얘기하고 싶다. 음악은 소리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예술은 만드는 것도 자유, 듣는 것도 자유니까.
박주용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물리학에 기반한 융합 데이터 과학 전문가로서 노트르담대학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너-파버 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카이스트 포스트AI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시간이 생긴다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박주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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