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기니와 북한, 두 독재자의 딸…“자본주의보다 인종차별이 더 힘들었다”
7세 때 평양행, 16년 살아
대학 졸업 후 스페인으로 가
서울에서 3년간 일하기도
1980년대에 자란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모니카 마시아스도 연말이 되면 아버지가 주실 새해 선물에 들떠 있곤 했다. 매년 12월31일, 그녀의 기숙학교엔 아버지가 보낸 과일과 음식 바구니 선물이 어김없이 도착했다. 반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선물을 보낸 마시아스의 아버지가 다름 아닌 북한의 초대 최고지도자 김일성이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독재자의 딸. 모니카 마시아스(51)를 수식하는 말이다. 얼마 전 영어 회고록 <평양에서 온 흑인 소녀>(사진)를 출간한 그는 엘파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마시아스는 책에서 “나중에 내 친아버지와 두번째 아버지인 김일성에 대한 서구의 평가를 알게 됐을 때 그야말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정체성마저 흔들렸다”고 말했다.
그의 친아버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는 1968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적도 기니의 초대 대통령이다. 11년 동안 독재 정권을 이어온 그는 쿠데타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자 세 자녀를 적도 기니의 우호국이었던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마시아스는 7세였던 1978년에 언니, 오빠와 함께 평양으로 떠난다. 그의 친아버지는 그해 쿠데타로 조카에 의해 처형됐다. 마시아스는 16년 동안 김일성 일가의 보호 아래 성장하게 된다.
그는 평양에서 적도 기니의 삶과 모국어인 스페인어도 잊어버린 채 한국어만 사용했다. 평양의 만경대혁명학원 인민학교에 다닌 마시아스는 학급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다. 김일성 주석의 추천에 따라 피복학과 전공을 택해 평양 경공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마시아스는 어느 순간 기계적으로 훈련받는 세상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대학 졸업 후 스페인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김일성은 “모니카야, 그 가혹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 수 있을 만큼 강하냐”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후 마시아스는 스페인, 미국, 중국 등에서 생활하며 정체성을 찾아나갔다. 그는 “나는 미국이 북한을 파괴하려는 사악한 나라라고 믿으며 자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생활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그는 자유와 개방성, 다양성 등에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자본주의’보다도 인종차별이었다. 북한보다 유럽에서 인종차별이 훨씬 심했다고 밝혔다. 2007년엔 서울에서도 생활했다. 서울의 의류회사에서 3년간 일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엔 한국어 책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를 출간했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남한과 북한은 체제는 다르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성격 등이 거의 똑같다고 했다.
마시아스는 영국 런던에 정착해 살고 있다. 런던의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런던의 한 옷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나는 그때 단지 어린 소녀였다”며, 양아버지 김일성에 대해 “같은 이념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나를 돌봐준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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