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자작극? 우크라 심리전?…설설 끓는 ‘크렘린 드론 공격’
NYT “어느 쪽에 책임 있든 푸틴은 확전 구실 삼을 것”
우크라이나의 ‘봄철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궁이 3일(현지시간) 드론(무인기) 공격을 받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이 공격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암살을 노린 우크라이나의 공격이라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이를 즉각 부인했다. 러시아의 자작극, 우크라이나의 심리전 등 무성한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어느 쪽이 사실이든 ‘확전’의 구실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날 핀란드와 네덜란드를 연이어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푸틴 또는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싸운다”며 러시아 측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푸틴에게 승리가 없고, 그의 국민들에게 동기 부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공격 명분을 쌓고 러시아를 결집시키기 위한 크렘린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앞서 크렘린궁은 이날 새벽 우크라이나 드론 2대가 크렘린궁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언제 어디서나 보복할 권리가 있다”며 보복 공격을 예고했다. 크렘린궁은 4일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한 결정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이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미국이 배후라고도 주장했다.
분석가들은 드론 공격이 발생한 지 12시간이 흐른 후 크렘린의 공식 발표가 나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간 러시아 정부가 본토 공격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려온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공격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메시지가 ‘고도로 조율’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드론 공격이 러시아의 ‘가짜 깃발’, 즉 위장 작전일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두 대의 드론이 여러 층의 러시아 방공망을 뚫고 크렘린 심장부 바로 위에서 폭발하거나 격추됐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며 “러시아 정부가 자국민에게 전쟁 위기를 부각시키고 더 광범위한 동원을 할 수 있도록 이 같은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믹 멀로이 전 미 국방부 차관보도 “러시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기 위한 구실로 (공격 주체를) 날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BBC에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날 텔레그램에 “젤렌스키와 그 파벌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만약 러시아의 주장대로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 측의 고의적 공격이라면, 이는 푸틴 대통령을 실제로 암살하려는 시도보다는 러시아를 흔들기 위한 ‘심리전 차원’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국경에서 직선거리로 450㎞ 이상 떨어진 모스크바 한복판을 공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 해군분석센터의 러시아 전문가 새뮤얼 벤뎃은 “ ‘크렘린궁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가 공격한 것이라면 “이는 지난 14개월간 이어진 전쟁에서 러시아 측의 가장 난처한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이번 공격은 푸틴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확대시키는 구실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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