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래, 키움증권 신뢰 추락에 사퇴…주가조작 구설에 백기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대규모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의 사퇴는 오너 리스크로 최대 위기에 놓인 키움증권을 구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대형 증권사 사주가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받는 것 자체가 불명예스러운 일로, 구설에 오른 지 일주일여 만인 4일 결국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수순을 밟게 됐다.
증권사 사주가 시세조종과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건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 중소형사나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의 사건들은 단발성으로 지나갔다면, 대형 증권사 사주가 의혹의 한가운데에서 이번처럼 집중 조명을 받는 건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난달 20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로 다우데이타 지분 3.65%(140만주)를 주당 4만3천245원에 처분해 605억원을 확보했다.
매각 주관은 해외 투자은행(IB)에서 담당했으며, 김 회장 지분은 외국계 펀드·기관이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딜 이후 2거래일 만인 지난달 24일 다우데이타 주가는 이틀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라덕연 씨 등 작전세력과의 연루설이나 키움증권 차액결제거래(CFD) 계좌에서 발생하는 특이사항을 미리 인지했을 가능성 등 김 회장에 대한 다양한 '설'들이 제기됐다.
특히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라 씨가 책임의 화살을 김 회장에게 돌리면서, 두 사람의 책임 공방이 이슈로 떠오른 데 따른 부담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황현순 키움증권 사장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회장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창업주로서 한 번도 불명예스러운 일이 없었다"며 "억울해하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더구나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제도권 대형 증권사인 키움증권에 미칠 악영향을 염려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평소 '은둔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는 김 회장으로서 이번 사퇴 결심은 파격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평상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최측근 인사들을 중심으로 기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현순 키움증권 사장이 김 회장의 대표적인 측근이자 '오른팔'로 꼽힌다.
이날 김 회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도 급박하게 이뤄졌다. 불과 1시간 전 취재진에 일정이 전해졌으며, 회사 내부에서도 이날 오후 늦게서야 기자회견 진행 방침을 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기상으로도 김 회장은 전날까지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 라 씨의 의혹 제기에 주식 거래 명세서를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반박했으나, 하루 만에 돌연 대응 방침을 바꾼 셈이 됐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객관적인 데이터로 소명을 하는데도 논란이 사그라지는 게 아니라 (김 회장과 라 씨의) 대립 구조로 번지고 사안이 너무 커져 버렸다"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 회장의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상황으로 회장직 사퇴는 보여주기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장이라는 건 원래 실체 없는 보직이고 김 회장은 경영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별로 진정성 있는 사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다우데이타 지분 매도로 얻은 605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방법은 거론하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기자회견 이후 키움증권은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한편으론 개인투자자들이 이탈 움직임을 보이면서 김 회장의 사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2000년 키움닷컴증권이라는 사명으로 출범한 키움증권은 개인 고객 비중이 높아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 부문에 강점을 두고 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사실상 개인 고객들 수수료로 먹고사는 회사가 김 회장 때문에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라며 "조직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키움증권은 이처럼 위탁매매 수수료에 편중된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 2분기 안에 초대형 투자은행(IB) 신청을 하고 연내 인가를 받을 계획을 내부적으로 세워두고 있었으나 이번 사태로 먹구름이 끼게 됐다.
초대형 IB를 신청하려면 별도 기준 자기자본 4조원을 충족해야 한다. 작년 말 기준 키움증권의 자본총계는 4조691억원을 기록해 신청 자격은 갖춘 상태다.
그러나 김 회장이 검찰과 금융당국의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된 만큼 '오너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 초대형 IB 진출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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