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수리한다고 휴원 공지한 뒤 ‘기습 폐쇄…’건물주, 상가 공사에 ‘차량 도보 통행’ 소송까지
3년째 방치…주민들 큰 불편
아이들 통학로에 안전 위협
서울 잠실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당초 사립유치원 용도로 들어선 건물을 ‘교육시설’로 보장해달라는 주민들과 교육시설 외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소유주가 갈등을 빚고 있다. 유치원 용도로 매입한 건물 일부를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한 소유주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를 상대로 도보용 통행로에 차량이 드나들 수 있게 해달라는 ‘주위토지통행권’ 소송을 제기했다.
잠실트리지움 아파트 내 잠실밀알유치원은 2021년부터 폐원 상태다. 알록달록한 건물 색과 미끄럼틀 놀이터가 흔적처럼 남은 유치원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다. 유치원과 아파트 입주민들의 갈등이 시작될 즈음 이사 왔다는 김모씨(40)는 4일 “여섯 살 아들에게 밀알유치원은 늘 닫혀 있는 곳”이라고 했다.
아파트 조합은 2007년 재건축 당시 ‘2000가구 이상의 주택단지에 설치해야 하는 필수시설’로 A씨(65)에게 유치원의 토지와 건물을 분양했다. 10년 넘게 유치원을 운영해온 A씨 측은 2021년 휴원한 데 이어 돌연 폐원했다.
입대의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건물을 수리한다며 주민 동의를 받아 휴원했다. 다음 학년도 원아모집에 적극 협조한다는 조건이 붙은 10개월 휴원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5월 유치원 측이 ‘막대한 공사 견적비용과 건강상 이유’를 들어 폐쇄 인가를 교육지원청에 신청했다. 현행법은 소속 원아 3분의 2 이상 보호자가 동의해야 폐원할 수 있는데, 당시 이 유치원은 휴원으로 기존에 다니던 원아들이 다른 기관에 배치된 상황이었다. 결국 ‘소속 원아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유치원은 그해 7월 폐원이 결정됐다.
주민들은 “유치원이 법망을 피해나갔다”고 말한다. 휴원 직전까지 밀알유치원에 아이를 보냈다는 입주민은 “리모델링이 끝나면 다시 열 것처럼 얘기해 믿었는데, 폐원해버려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유치원 부지는 제 기능을 잃었다. 4세·2세 된 두 아들을 키우는 전현희씨(36)는 “큰아이는 아직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데, 주변에 유치원은 영어유치원뿐이라 계속 어린이집을 보낼 듯하다”며 “밀알유치원이 개원해 있었으면 당연히 보냈을 텐데…”라고 했다. 주민들은 유치원 공간으로 계획된 부지인 만큼 매입 등을 통해 단지 내 유치원을 확보해달라고 구청·교육지원청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구청과 교육지원청은 예산 부족, 취학아동 감소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A씨가 여전히 소유 중인 유치원 건물의 2·3층을 뺀 절반인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근린생활시설’로 용도가 변경된 상태다. 법상 건물 면적 2분의 1까지는 유치원 외 용도로 쓸 수 있다. 폐원 결정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상 1층에 편의점 공사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반발했다.
지난 3월 소유주 측은 입대의를 상대로 ‘유치원 부지 앞 통행로에 차량이 드나들 수 있게 하라’는 주위토지통행권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는 “법원은 건물을 편의점 또는 학원 등의 용도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물건을 운반하는 트럭이나 건물 이용자들의 차량 등이 통행할 수 있는 통행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적혔다.
유치원 부지는 아파트 단지 내 매미근린공원과 영동일등학교에 인접해 있다. 지상으로 차량이 다니지 못하게 설계된 이 단지에서 유치원 앞 통행로는 도보로만 이용됐다. 조아란 밀알유치원 비대위원장은 “벚꽃로라고도 불리는 유치원 앞 통행로는 아이들이 산책하고 공놀이하고 자전거 타는 ‘주민 광장’이나 다름없다”며 “유치원이 운영될 때엔 셔틀버스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던 곳”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아동 교육권 침해’에 이어 혹시 모를 ‘차량 안전 문제’까지 신경 쓰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파트에 6년 넘게 거주한 김소영씨(42)는 “아이들이 통학하는 ‘차 없는 길’을 어른들의 이익 때문에 차가 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아니냐”며 “무리한 요구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잠실밀알유치원 관계자는 “소장에 다 나와 있다”며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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