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한민국 어린이는 오늘 안녕한가요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대한민국의 어린이로 태어나고 싶은가.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이자 대중문화와 음식 트렌드를 주도하는 문화강국이지만, 잠시 고민하게 된다. 어린이에게 대한민국은 그리 살기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아동·청소년 삶의 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로 최하위권이다. 저출생에 아이가 귀한데도 우리 사회는 이들을 온전하고 고유한 인격체로 환대하고 존중하는 데 인색하다. 거친 물살에 치어가 버티기 힘든 것처럼, 격심한 경쟁 체제에서 사회의 약자인 아이들은 가장 고달픈 존재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잇따라 발생한 ‘자녀 살해’ 사건은 이를 방증한다. 30대 아빠가 아기를 안은 채 투신했고, 한 30대 엄마는 일곱 살 아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왜곡된 유교 사상을 가진 부모들이 경제난에 극단적 아동학대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아들이 버려지거나 살해되고, 어린아이들이 집에 홀로 장시간 방임된 채 굶어죽는 처참한 사건도 끊이질 않는다. 아동학대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가해자의 80% 이상이 함께 사는 부모다. 그간 ‘서현이법’ ‘원영이법’ ‘정인이법’을 비롯해 학대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딴 법이 계속 만들어졌지만 바뀌질 않고 있다. 학대받은 아이들이 부모가 되는 방법을 몰라 학대를 대물림한다는 연구가 많다.
가정 밖에서도 아이들은 불안하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에 이어 올해 4월엔 대전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희생됐다.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자고 2020년 ‘민식이법’을 만들었지만 스쿨존 교통사고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약자를 배려 않는 강자 중심 문화를 아이들이 등·하굣길에서부터 겪는 셈이다. ‘학원 뺑뺑이’로 요약되는 사교육도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약 43만원으로 전년 대비 9% 넘게 늘었다. 직업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초등생 의대 준비반’까지 등장했다. 아동기부터 꽉 짜인 교육체제에서 점수로 철저히 평가받는 고달픈 시간을 견뎌야 하는 셈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아동의 건강권도 위기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급락하고, 응급의료기관이 부족해지면서 전국 상당수 지역에서 아픈 아이들이 치료받을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입장을 거부하는 ‘노키즈존’은 아이들에게 사회통합이 아니라 차별을 암묵적으로 가르친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는 말했다. 한국사회는 경쟁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루는 데 성공했으나, 현재는 경쟁이 아이들의 행복과 사회의 미래까지 잠식하고 있다. 청년세대는 집값 부담에 고용불안까지 겹쳐 이런 나라에선 미안해서 아이를 못 낳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살 만한 나라가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다. 비까지 내리는 101번째 어린이날, 대한민국 어린이는 안녕한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