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정치판의 ‘말 반사’
말의 힘이 극대화되는 곳이 정치다. 한 줄의 말이 상대 정곡을 찔러 꼼짝 못하게 하고, 유머와 위트는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요즘엔 정치판의 공격 수단으로 ‘말 반사’가 종종 등장한다. 상대가 한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말장난 같지만, 자신이 했던 말이라 더 아프고 뭐라 되받기 머쓱할 때가 많다.
‘말 반사’를 많이 하는 이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를 묻자, “당내 민주주의를 고민하느라 대통령 말씀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이 회견에서 이 전 대표 행보에 대한 질문에 “민생에 매진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 발언을 제대로 챙길 기회가 없었다”고 한 말을 빗댄 것이다. 윤핵관들이 이준석 체제를 비상대책위 체제로 바꾸려 할 즈음이라 ‘여권 투톱’의 관계는 불편했다.
윤 대통령 방미 중 나온 ‘이 XX들’ 발언 논란 때도 말이 반사됐다. “국민도 귀가 있다. 욕하지 않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자 당시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똑같이 돌려드린다. 지금 들어도 형수에게 욕설한 거 맞지 않나”라고 받아쳤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4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향해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면 아무 일도 안 생길 텐데 참 우려스럽다”고 했다. 태영호 최고위원을 통한 당무·공천 개입 의혹을 야기한 이 수석의 처신을 꼬집은 것이다. 이 수석은 여당 전당대회에서 안 의원을 향해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압박했던 당사자다. 안 의원은 이 수석의 말을 돌려주며 ‘너나 잘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뉘앙스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태 최고위원의 거짓말로 수습하려고 한다. ‘용산출장소’ 소리 듣는 여당 처지를 감안하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로 보는 내부 시각도 적지 않다. 유승민 전 의원도 그런 이유로 “녹취록 내용이 사실인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당당하다면 태 최고위원을 고발이라도 해서 무혐의를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 언론과 야당에는 ‘가짜뉴스’라고 득달같이 고발했던 대통령실의 침묵이 오히려 수상하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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