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풀어놓은 자연의 위대함… ‘3인3색’ 봄날의 향연

김신성 2023. 5. 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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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없어 더 마땅한’ 회화전
노현우·유정현·이이정은 작가 참여
예측할 수 없지만 기대하게 만드는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 등 무한매력
독창적이고 개성 강한 필치로 묘사
삼청동 갤러리 진선 14일까지 전시

자연은 본질 그 자체여서 위대하다. 예측할 수 없으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 또한 자연의 매력이다. 그야말로 꾸밈이 없어서 더 마땅히 아름답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회화작가 유정현, 이이정은, 노현우 3인이 각자 경험한 자연의 에너지를 독창적이고 개성 강한 필치로 캔버스 가득 풀어놓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 진선은 올해 첫 전시 주제를 ‘꾸밈없어 더 마땅한; Nature Itself’라 잡고, 이들의 시선을 소개한다.

◆묘사하기보다는 ‘우연’을 통해 발현 ― 유정현

“돌발적이고 우연적인 상황에 제 스스로를 놓이게 해요. … 지우고 혹은 닦아내고 뿌리고 뭔가 긁어내고 얼룩을 만들고, 이 같은 우연성을 캔버스 위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죠. 그래서 묘사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만의 새로운 형상을 찾아내는 거예요.”
유정현 ‘Discontinuous_15’(116.8x91cm, 2023) 자연의 형상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저절로 나타난 것이다. 갤러리 진선 제공
유정현은 붓질의 속도감, 운동성, 압력과 같은 물리적인 속성들이 가져다주는 긴장감에 중점을 둔다. 그의 회화 속 자연의 형상은 뚜렷한 계기나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저절로 나타난 것이다. 계획하지 않고 변화를 도모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그대로 자연의 성질과 닮아 있는데, 우연히 몰두한 추상에서 예사스런 식물의 형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특정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그리는 과정 속에서 우연히 발견된 형상에 몰입하다 보니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선에서 자연의 형태가 발현되는 것이다.

작가는 캔버스 위 빠른 속도로 그어낸 붓질, 그로 인해 생기는 기포와 얼룩들, 애써 만든 붓질을 닦거나 지우는 방식, 이미 그려낸 형상을 다시 물감으로 덮는 것과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쉴 새 없이 반복한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만의 조형적 선택들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면서 캔버스 위로 필연적인 형상들을 품어낸다.

◆망설임 없는 터치로 생명을 부여 ― 이이정은

“살아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데, 평평하게 그린 그림은 느낌의 한계가 있었어요. 좀 더 입체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회화이지만 무엇인가 사물화시키고 싶어서 더 튀어나오게 듬뿍 칠하기도 하고 덜 튀어나오게 바르기도 해요.”
이이정은 ‘거기-202217’(145.5x112.1cm, 2022) 회화이지만 입체성을 띤 독자적 화풍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갤러리 진선 제공
그의 회화는 저마다 자유로이 살아 있는 것들을 담아낸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봄에 피어 올라오는 아지랑이, 시원한 바람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 버드나무라던가 작가가 직접 보고 살갗으로 느낀 자연을 과감하고 망설임 없는 붓 터치로 표출해낸다.

이러한 작업은 버려진 폐광촌이 자연의 끈질긴 소생력으로 치유되는 것에 매료되면서 시작됐다. 자연의 생동감을 표현하기 위해 물성을 한껏 끌어 올리면서, 회화이지만 동시에 입체성을 띤 독자적인 화풍으로 이어갔다.

이번 전시작은 야생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 쌓아 올린 물감을 한 꺼풀 벗겨내는 새로운 방식이 더해졌다. 자연은 작가에게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이자 에너지다. 작가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연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그 응집된 자연의 에너지는 화면을 뚫고 보는 이에게 전달된다.

‘이정은’이라는 이름이 하도 많아서 앞에 다를 ‘이(異)’ 자 하나를 붙였다고 귀띔한다.

◆‘평온’, ‘순수’, ‘정화’ 풍경화의 힘 ― 노현우

“소재를 찾기 위해 여행을 자주 가는데,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저를 사로잡았던 풍경, 그 장면을 옮기는 겁니다. 그 당시 공기, 바람, 그리고 구름의 움직임 같은 것들. 그 장소에서 오로지 저만 느꼈던, 내 기억 속 그날의 감정을 되새김질하면서 복원해냅니다.”
노현우 ‘No.125-PM0913 12° 25.AUG.2019’(145x55cm, 2023)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평온’, ‘순수’, ‘정화’가 가슴을 파고든다. 갤러리 진선 제공
그의 풍경을 마주하면 마음은 순식간에 평온을 얻는다. 일상에 찌들어 잊고 살던 순수와 선함을 되찾게 된다. 정화된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담백하게 고즈넉하다. 서정적인 음악이 떠오르는 그의 회화는 풍경화를 넘어 기록 행위이기도 하다. 작품 제목은 화면 속 장소와 시간 등 방문 정보(시간, 온도, 방문날짜 등)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일기를 쓰듯 그때를 회상하며 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캔버스에 끄집어낸다.

풍경의 시작점은 그의 러시아 유학시절부터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산 없이 탁 트인 들이나 호수,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차분하게 보고 그렸다. 타국에서 느꼈던 이방인의 공허함을 자연이 위로해 주고 채워 주었던 경험의 기록이다. 그것이 그대로 지금의 풍경작업이 됐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 속으로 관람자를 초대하고자,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사실적 표현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 예민할 만큼 섬세한 그의 표현력 덕분에 평면을 넘어 현장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14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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