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알고 싶고… 첫눈에 반하기도…[엄형준의 씬세계]

엄형준 2023. 5. 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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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사랑의 해석’ 담은 두 영화
심혜정 감독 ‘너를 줍다’
쓰레기에 진실 있다며 뒤지는 그녀
타인 알거나 공감 위한 욕망의 표현
“타당한가 고민… 선 안 넘으려 조심”
남주 현우 “중요한 건 진심 아닐까”
바그니 감독 ‘라모나’
감독·남친과 삼각관계 배우 지망생
영화 속 현실·촬영, 흑백·컬러로 구분
“사랑은 영혼끼리 알아보는 그런 것
두려움보다 희망 전달하고 싶었다”

독립영화의 장인 전주국제영화제에선 다양한 실험적 영화가 선보인다. 때론 음향이 없거나, 반짝이는 화면만 줄기차게 보여주는 영화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두 편의 영화는 따라가기 한결 쉽지만, 그렇다고 진부하진 않다.

‘너를 줍다’와 ‘라모나’는 보고 난 후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사랑의 해석과 인간 탐구를 담은, 신선한 소재와 방식의 영화다. 전주영화제를 통해 국내 대중에 처음 공개된 두 영화의 감독과 배우를 전주에서 만나 영화와 인간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얘기를 들어봤다.
너를 줍다
◆알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

‘너를 줍다’는 ‘욕창’으로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심혜정 감독이 4년 만에 영화제에서 다시 선보이는 작품으로, 올해 한국경쟁부문에서 ‘CGV 상’과 ‘왓챠가 주목한 장편’ 2개 부문을 수상했다. 연내 극장 개봉을 준비 중이다.

영화는 문예창작과의 필독서로 불리는 하성란 작가의 ‘곰팡이꽃’을 원작으로 했다. 원작은 쓰레기봉투 속에 진실이 있다고 믿으며, 이를 뒤져 이웃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심 감독은 “요즘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걸 보고 기본 정보를 안 뒤 만난다고 한다. 오래전에 읽은 곰팡이꽃이 생각났고 두 이야기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안전하게 타인과 만나고 싶어하고,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인스타그램을 뒤지는 것과 쓰레기를 뒤지는 건 닮은 점이 있다는 게 심 감독의 설명이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영화에서 여성인 ‘지수’로 바뀌었다. 지수(김재경 분)는 쓰레기를 통해 이웃을 파악하던 중 옆집에 이사 온 ‘우재’(현우 분)의 쓰레기를 보고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책에선 쓰레기 뒤지는 남자가 사랑의 관찰자이지만, 영화에선 지수가 우재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실제 만남으로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대부분 호감이 가는 타자에 대해 알거나 공감하기를 원한다. 인스타그램을 뒤지고,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시는 건 다 그런 욕구의 결과다. 그러나 보통 쓰레기까지 뒤지진 않는다. 이런 행위는 공개되지 않은 정보에 대한 접근이기에 불쾌감과 불안감을 유발하고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심 감독은 “스토킹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라며 “영화를 찍으면서 이 부분이 타당한가 고민을 많이 했다. 선을 넘는 것에 대해 조심하려고 했다”고 했다.

촬영 전 실제 쓰레기를 뒤져본 심 감독은 이 안에 우리를 알 수 있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고 했다.

심 감독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대이면 이런 쓰레기가 나오는구나 싶었고, 여자 메이크업 용품과 버려진 아이 실내화 한짝을 실제 영화에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심혜정 감독.
영화는 관계 맺기에 관한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배우 현우는 “만남에서 나는 진심이지만 상대방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더 중요한 건 나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사랑으로 넘쳐나길 바라는 심 감독은 “인간은 사랑하는 존재란 생각이 든다. 두려워 말고 사랑의 에너지를 잘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라모나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영화제 월드시네마 초청작으로 5월 개봉 예정인 ‘라모나’는 라모나에 한눈에 반한 영화감독과 현재 동거 중인 남자친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배우 지망생 라모나를 그린다.

스페인 여성 감독 안드레아 바그니가 연출한 영화는 형식부터 독특해, 전부 아날로그 방식의 16㎜ 필름으로 촬영됐고, 영화 속 현실은 흑백, 영화 안에서의 촬영 장면은 컬러로 그려진다.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감독은 회고했다. 바그니 감독은 모든 컷을 최대 두 번 만에 찍었고 결과적으로 예산은 디지털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감독은 “배우들은 한 번에 끝내야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진실함을 한 번에 담으려고 노력했고, 관객과 더 깊은 몰입 관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단 한 번의 촬영에도 즉흥대사는 없었고, 전부 스크립트에 있는 내용대로 표현됐다고 강조했다.

상당히 많은 대사가 나오는 영화임에도 리허설에 4주, 실제 촬영엔 3주가 걸렸다. 반복 촬영이 없다 보니 제작 기간이 예상보다 단축돼 스태프도 굉장히 좋아했다는 게 후일담이다.
감독이 우디 앨런의 ‘맨하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영화는 대표적 누벨바그 영화인 장뤼크 고다르 감독의 ‘400번의 구타’를 떠올리게 한다.

바그니 감독은 “그 영화를 생각하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때 당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그런 기법들이 제가 영감을 받았던 것들이고 그게 라모나에서 보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라모나는 ‘러시안 레드’라는 밴드의 보컬인 루르드 에르난데스로, 첫 주연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흡입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사람은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재들이다. 영화감독인 브루노는 라모나에게 반해 오디션을 하자마자 주연으로 발탁하고, 라모나는 자신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 브루노가 부담스러워 출연을 고사한다. 하지만 라모나의 남자친구는 라모나를 믿고, 출연을 부추긴다.

영화 속 대사대로 충동대로만 살면 쉽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진 않는다.
바그니 감독.
바그니 감독은 본인에게 닥친 실제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는다. “남자친구는 없는 상태였지만 ‘나의 부르노’와 결혼했다”는 바그니 감독은 “에너지라고 할 수 있거나 비슷한 영혼끼리 서로를 알아보는 그런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영화 속 촬영 장면이 컬러인 것은 영화가 허구이면서도 더 현실적이고, 배우들의 진짜 감정을 담는다는 상징이며 동시에 영화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바그니 감독은 “(사랑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두려움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희망을 바탕으로 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주=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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