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압박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우려 [죽음이 삶이 되려면]
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50대 남성이 간경화로 진단받고 치료를 받던 중 간암이 발견되었다. 절제 수술을 받았으나 3년 후 간암이 재발했다. 그 후 간 기능은 급속히 저하되었고, 복수와 간성혼수로 인해 결국 생명이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생명 연장을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간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었다. 환자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이식 대기자로 등록하고 기다렸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뇌사자 기증률이 낮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는다는 것은 특별한 행운이 함께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대기자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지만 실제 기증자는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상황을 알게 된 아들이 자기 간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한 하나뿐인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여 처음에는 부모가 반대했으나, 결국엔 기증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자식뿐 아니라 사위나 며느리가 장인 혹은 시어머니에게 간을 기증하는 것을 미담으로 소개하는 기사를 언론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진료 현장에서 가족 중 누가 환자를 위하여 장기를 기증할지를 두고 겪는 갈등의 긴장감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버지에게 간을 제공하기로 했던 아들이 수술 전날 사라지기도 하고, 남편이 시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하는 것을 반대하는 며느리 때문에 전 가족이 불화에 휩싸이기도 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 제거와 같은 연명의료 결정은, 생존기간 연장에 수주 내지 수개월의 영향을 미쳐, 갈등 요인이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생체장기이식의 경우, 공여자의 희생에 따라 이식이 성공하면 환자는 수년 또는 수십 년 더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에게 이식은 포기하기 어려운 선택지이다.
심장 또는 폐이식은 뇌사자의 장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나, 간과 신장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생체 이식을 할 수 있다. 신장이식의 경우, 투석이라는 대체 의료기술이 보편화된 반면, 간 부전에서는 이런 기술이 제한적이라 이식술 여부가 환자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질환 상태에 따라 성공률은 차이가 있지만,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통계로는 전체 간 이식 환자의 수술 후 5년 생존율은 77%에 이르고, 우리나라는 미국과 함께 세계적으로 간 이식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이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생체 간 이식 비율이 현저히 높다는 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93.8%가 뇌사자의 간으로 수술이 이루어지지만, 우리나라는 76.4%가 건강한 사람이 간을 기증하는 생체간이식이다. 인구 10만 명당 생체간이식 비율은 한국이 22.6명으로, 미국(1.7명)이나 독일(0.64명)의 10배를 훨씬 넘는다.
생체장기 공여자에게 발생하는 부작용의 위험은 없을까? 우리나라에서 생체간이식에 참여한 기증자 1만116명에 대한 추적조사 결과가 2021년 발표되었는데, 53명의 사망자가 관찰되었고, 같은 연령대의 건강한 인구와 비교하여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이 중 17명은 장기기증 후 3년 이내에 사망하였다. 생체장기 공여자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는데, 실직이나 이혼을 한 사례에서 많이 발생하였다.
젊은 자녀가 부모에게 간을 기증하는 것이 이식 수술의 절반에 가까운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자녀가 장기기증을 쉽사리 거부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런 문제를 고려하여, 다른 나라에서는 미성년자의 장기기증을 추천하고 있지 않으며, 불가피한 경우 18세 이상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16세부터 부모의 동의하에 장기기증이 가능하고 18세 이하의 장기 기증자가 3%에 달한다.
장기이식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그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뇌사자 장기기증이 적은 우리나라에서, 가족 간 기증이 당연하게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수반되는 문제들은 우리가 논의해야 할 과제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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