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노조 혐오 방정식 : 지지율 장사의 밑천
2023년 5월 1일 아침,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간부가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자신의 몸을 불살랐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하루 뒤 숨졌습니다. 고인은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공갈, 업무방해로 기소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혐의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강원도 내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현장 간부 급여를 요구하는 등 건설 업체들로부터 8,000여만 원을 뜯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인을 분신에 이르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분신 전 그는 유서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힘들게 끈질기게 투쟁하며 싸워서 쟁취하여야 하는데 혼자 편한 선택을 한지 모르겠습니다.
-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제3지대장 故 양회동 씨 유서 중
고 양회동 씨는 건축물의 벽, 기둥을 세우는 일용직 철근공이었습니다. 불안정 고용을 개선하기 위해 그는 노동조합을 찾았습니다.
노조 활동을 통해 건설사와 단체 협약을 맺고, 염원하던 노동자로의 권리를 일부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고용 안정과 노조 전임비 지급 같은 문제들이 노조와 건설사 간 교섭을 통해 조금씩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유서에 담긴 내용처럼, 고인에게 노조 활동은 자랑이었고 자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건설노조를 겨냥한 현 정부의 불법 몰이 속에 그의 삶은 범죄자로 낙인찍혔습니다. 노사 교섭을 통한 합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건설 현장의 관행을 불법으로 만드는 '법 기술'이 들어왔습니다. 건설 현장의 기형적인 비정규직 고용 구조 속에 차별과 맞섰던 그의 싸움은 폭력이 됐고, 교섭을 통해 이뤄낸 작은 권리들은 공갈과 업무방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고인의 죽음은 윤석열 정부 1년을 맞는 시점, 자신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싸워온 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절망감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비극의 시작에는 혐오의 정치가 있습니다. 벼랑 끝에 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을 정부가 나서 불법으로 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정부는 아랑곳없습니다. 노동자 탄압에 법 기술을 악용하고, 오히려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노조 때리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 추이를 살펴보면 왜 정부가 이토록 노조 문제에 집착하는지 속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줄곧 내려가 20%대까지 추락했습니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지난해 11월 화물연대의 파업 때부터입니다.
대통령, 장관이 나서 파업에 대한 불법 몰이를 시작했고, 노조에 대한 혐오 정서가 사회 전반을 휩쓸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혐오와 분열의 정치는 지지율에 도움이 됐습니다.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 이후 반등하기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이 시기 취임 이후 최고치인 40%대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에도 정부는 같은 방식으로 지지율을 끌어 올렸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건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노조를 공격했고, 정부와 언론에서는 이른바 '건설노조와의 전쟁'라는 험한 말이 오르내렸습니다. 주춤하던 국정수행 지지율은 반등했고, 노조를 향한 전방위적인 공격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정부의 노조 때리기가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치트키'처럼 사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혐오의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경에는 깊이 뿌리내린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는 지역, 연령대, 정치 성향, 지역을 가리지 않고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져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노조 혐오의 정서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뉴스타파는 지난 10년간 언론이 노조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분석했습니다. (※ 관련기사 링크: https://newstapa.org/article/tBYLC) '노조와 폭력', '노조와 불법' 등 노조와 부정적 개념을 연결 짓는 언론의 언급이 오랜 시간 계속되어 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정치-언론-재벌의 보이지 않는 담합이 있습니다. 혐오는 이들 각자에게 이익이 됐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동 환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기업', '정규직' 등 중심으로 짜인 현행 노동조합의 기득권 문제도 노조 혐오를 부르는 한 축입니다. 노동조합에게조차 소외되어 있는 노동자들은 뉴스타파의 카메라 앞에 서서 노조 혐오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연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성 노조에게 문턱을 낮추고 기득권을 나누는 '나누기'의 함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뉴스타파 신동윤 shintong@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