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통영이 낳은 ‘바다의 화가’ 전혁림
[KBS 창원] [앵커]
경남 문화예술 거장의 예술혼을 재조명하는 '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오늘은 통영 바다가 낳은 천재 추상화가 전혁림 화백의 95년 삶과 작품 세계를 진정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통영항의 펄떡이는 생명들이 하얀 벽면 위로 펼쳐집니다.
가로 7m, 세로 2.8m.
대형 캔버스가 걸린 곳은 청와대 영빈관 '인왕실'입니다.
2006년부터 16년 동안 국내외 귀빈을 맞았고, 지난해부터는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준하/청와대 관람객 : "산과 바다와 들과 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려져 대한민국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는 그림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부탁을 받은 당시 아흔 살의 화가는 넉 달 동안 '통영항'을 다시 그렸습니다.
[전영근/화백/전혁림 화백 아들 : "노무현 대통령께서 방문해서 큰 그림을 보고 감흥을 받고, 비슷하게 새 작품을 해달라 부탁해서 이 장소에서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놓고 비교해 가면서 그렸던 그림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추상 화가 전혁림은 1915년 통영에서 태어났습니다.
독학으로 그린 그림이 1938년 부산미술전에 입선하면서 미술계에 입문했습니다.
1952년 부산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 초대장 발문은 친구인 유치환 시인이 썼습니다.
["혁림의 예술- 숱한 군중 속에 섞여 있어도 차라리 무한히 외롭듯이 혼자 아무리 고독하여도 쬐끔도 슬프잖듯이, 혁림은 그렇게 자기의 예술에 정진하고 있음을 나는 압니다."]
친구 김춘수 시인의 시에 석판화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화가는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고 전혁림 화백/2006년/당시 91살 : "돈이 있어야 그림을 그리지 이 재료들이 얼마나 비싼지, 전부 영국제인데…."]
일흔이 돼서야 이름이 알려지고 그림도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다를 품은 열두 발 상모가 나는 '농악'은 경남도청에, 오방색이 역동적인 '코리아 판타지'는 창원지검 통영지청 로비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흔다섯,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화가는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 전혁림 화백/2005년/당시 90살 : "다라만 아파, 온 만신이 다 아프지. 온 만신이 아파. 누워 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그려요."]
화가의 집은 미술관이 됐습니다.
아버지의 작품은 1층과 2층에, 아들의 작품은 3층에 걸렸습니다.
바다와 가까운 조용한 산골에 마련한 작업실은 이제 아들이 홀로 지키고, 화가는 작업실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아내와 함께 잠들었습니다.
[전영근/화백/전혁림 화백 아들 : "위에서 작업하고 내려오시다가 햇빛이 너무 바르고 좋아요. 항상 여기서 휴식을 하셨고…."]
화가의 미술관 주변은 자연스레 화가 지망생들이 찾아드는 예술가의 마을로 변해가고, 화가의 그림은 도심 속 고층 아파트 외벽에도, 차들이 오가는 도로변 절개지에도….
고향 통영 곳곳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고 전혁림 화백/2005년/당시 90살 : "고향을 버릴 수가 없어요. 고향이 좋고, 나는 뛰어난 사람은 어디 있어도 빛이 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고향을 버리지 않고 통영에서 생활을 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여기서 내가 아마 죽게 될 것 같아요."]
KBS 뉴스 진정은입니다.
촬영기자:김대현·조은경/자막제작:김신아
진정은 기자 (chri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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