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세월 고스란히 담겨, 9년 만에 공개된 국보 천마도
신령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며 하늘로 비상하는 하얀 말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신라인들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성한 동물로 여긴 천마(天馬)가 전시장 한복판에서 관람객을 맞았다. 일부 갈라지고 바스라질 듯 위험해보였지만, 갈기를 휘날리며 하늘을 달리는 역동적인 기운은 1500년 세월을 뛰어넘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국보 천마도가 9년 만에 수장고 밖으로 나왔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4일 개막한 천마총 발굴 50주년 기념 특별전 ‘천마, 다시 만나다’에서다. 박물관은 이날 천마총뿐 아니라 금관총, 금령총 등 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천마도 4점을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했다.
◇“화공이 방금 붓을 놓은 듯한 생생함”
신라인들이 만든 천마도는 모두 말다래에 그리거나 장식돼 있었다. 말다래는 말을 탄 사람에게 흙이 튀지 않도록 말 안장 양쪽에 늘어뜨리는 판이다. 박물관은 “신라 건국설화에서 천마는 시조의 탄생을 예견하는 흰 말로 등장한다”며 “신라인들이 그만큼 신성시한 동물”이라고 했다.
금관과 관모, 허리띠 등 금빛 찬란한 유물을 지나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천마도를 만난다. 1973년 경북 경주시 황남동 155호분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이 그림 덕분에 고분 이름도 ‘천마총’이 됐다. 당시 발굴 조사에 참여한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아무리 땅속이라고는 하지만 연약한 자작나무 껍질이 그 오랜 세월을 견디어 왔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며 “특히 위쪽 판을 들어내자 그 아래에 펼쳐진 천마도는 기적이었다. 천마와 그 둘레를 에워싼 사실적 도형들에는 이제 막 화공이 붓을 놓은 듯한 생생함이 묻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빛에 약한 그림이라 지금까지 단 세 차례만 공개됐다. 발굴 당시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말다래는 두 장이 겹쳐진 채 출토됐다. 위에 있던 한 점은 손상이 심했고, 아래에 있던 것은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마도는 아래쪽 말다래다. 이번 전시에선 두 점이 교체 전시된다. 아래쪽 말다래는 6월 11일까지, 위쪽 말다래는 6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전시된다. 박물관은 “두 마리 천마를 번갈아가며 만날 수 있는 기회”라며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21세기 보존처리 기술의 성과
또 다른 천마들도 마지막 진열장에 나란히 놓였다. 대나무로 만든 말다래에 장식한 금동 천마도는 2014년 공개된 후 두 번째 나들이다. 1970년대 열악한 기술로는 복원 불가능했던 것을 41년 지나 21세기 첨단 보존 처리 기술로 이뤄낸 성과였다. 2014년 경주박물관이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1500년 동안 엉겨 붙어 있던 흙과 녹을 벗겨내니 신령스러운 천마의 형체가 드러났다. 몸체에는 비늘 무늬, 마름모 무늬가 가득하고 눈과 귀, 정수리 뒤쪽으로 뻗은 갈기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발굴 당시는 물론 보존 처리 직전까지도 천마 문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성과였다. 이때 천마총 말다래에서 금동으로 장식한 천마가 있다는 게 확인된 후, 일제시대에 출토된 금관총과 금령총 말다래에도 비슷한 천마 무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번 전시는 신라인들이 말다래에 장식한 천마를 모두 공개하는 자리”라고 했다. 전시는 7월 16일까지. /경주=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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