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칼럼] 관치금융을 대체할 금융감독을 위해

한겨레 2023. 5. 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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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칼럼]이번 CFD 사태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내막을 철저히 밝혀 엄중히 제재함으로써 금융범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한편 이런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일각에서는 사후 제재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사후 제재를 피하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된다. 엄중한 사후 제재야말로 훗날 유사 사고 예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23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추 부총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참석자들은 당일(현지시각) 미국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5%로 정한 데 따른 국제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빠르게 오르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지난 1월 이후 3.50%에 멈춰 선 가운데, 지난해 11월 4.34%까지 치솟았던 코픽스(COFIX) 금리가 5월 초 3.56%(신규 취급액 기준)까지 떨어지면서 시장금리가 기준금리에 근접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가 주춤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시기상조라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시장금리 인하 압박이 시장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통화당국과 금융당국 간 정책의 부조화가 시장에 혼선을 초래하는 양상인데, 이는 양자 간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은의 정책목표가 물가 상승 억제인 데 비해, 금융당국은 성장과 금융안정을 중시한다. 시장금리 상승은 부채 상환 부담을 키워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기침체와 대출부실 가능성을 확대할 수 있다.

한편 한은이 통화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기준금리라는 공개적인 정책 수단을 사용하는 데 비해, 금융당국은 시장금리와 관련한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 고객에게 법으로 보장된 금리인하 요구권을 행사하도록 촉구할 수 있으나, 효과가 불만족스럽다. 은행권에 단기연체자들의 이자를 낮춰주는 프리워크아웃 방식의 고객 지원을 권장하지만 실제 효과는 은행에 달려 있다. 결국 가시적 효과를 위해 금리를 조정하도록 은행을 직접 설득하거나 압박하면 ‘관치’라 비판받고 부작용도 뒤따른다.

지난 3월 금융당국의 은행권 수신금리 인하 요구도 부실대출 예방 목적이었으나 예금자 소득으로 은행의 조달 비용을 보조해준다는 비난이 거셌다. 대출금리 인하 촉구 역시 오히려 필요한 사람이 대출을 거절당하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물론 금융당국은 금리 외에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금액 규제와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규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SIB) 규제 및 그 밖의 자본금과 유동성 규제 등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즉시성이나 특정성 면에서 실효성이 높지 않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관치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관치가 지속되면 시장의 자율과 창의가 사라져 금융 발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 역사가 증거하는 사실이다.

한국은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무역의존도가 높으면서 기축통화국이 아닌 까닭에 위험 노출이 크다. 특히 최근 수출이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무역수지 적자가 14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국가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 게다가 가계 및 기업부채 합계가 국내총생산(GDP)의 2.2배를 넘은 상황에서 경기침체와 대출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은행들은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이익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사모펀드 사태의 소비자 피해가 미처 마무리되기 전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로부터 한국 경제 선진화를 위한 중개 역할이나 국가위험 관리 고민보다 규제 완화 요구만 크게 들린다. 그래서 은행들이 바라는 규제 완화와 자율 확대를 그대로 수용하기가 어렵고, 지속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진정으로 규제 완화를 원한다면 국가 경제 시스템 리스크 관리와 소비자 보호 등에 은행들의 책임 있는 대응 방안 제시가 순서일 것이다. ‘이익은 사유화, 비용은 사회화’라는 전략은 더는 수용되기 어렵다.

지난달 24일 차액결제거래(CFD) 관련 8개 종목의 주가 폭락으로 드러난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는 규제 완화가 위험 노출을 확대한 사례다. 시에프디는 현물 보유 없이 기초자산의 진입가격과 청산가격 간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외파생상품 거래다. 2019년 11월 금융위원회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개인전문투자자 요건을 특정 금융투자상품 잔고(최근 5년 중 1년 이상 월말 평잔) 기준 5천만원으로 크게 완화한 것이 시에프디 투자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셈이 됐다. 뒤돌아보면 그간 키코(KIKO) 및 사모펀드 사태 등에서 투자상품의 불완전판매 내지 부당판매 제재를 가볍게 처리하거나 지연한 것이 피해를 키웠다는 시각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시에프디 사태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내막을 철저히 밝혀 엄중히 제재함으로써 금융범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한편 이런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일각에서는 사후 제재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사후 제재를 피하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된다. 엄중한 사후 제재야말로 훗날 유사 사고 예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기 때문이다.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 2008년 금융위원회 모두 합의제 행정기구 형태로 출발했던 것은 금융시장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두 기구 모두 독임제 행정부처 운영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관치금융 확장에 기여했다.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2003년 카드 사태 때 김석동 금감위 국장)는 말이 시사하듯, 법과 규정이 허술한 부분에 관치가 파고들었고 모피아(금융 관료+마피아) 낙하산을 퍼뜨렸다. 특히 2008년 이후 금융위가 금융산업진흥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모두 취급하게 되면서 산업진흥이 감독을 압도해 제대로 된 금융감독 역량이 자라기 어려웠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필요한데, 금융위의 금융산업진흥정책은 기획재정부로 보내고 금융감독정책은 금감원의 집행 기능과 합쳐 독립적이고 효율적인 금융감독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전술한 시에프디 사태와 관련해 지난달 초 금융위가 사건의 징후를 인지하고도 금감원과 정보 공유를 늦게 하는 바람에 투자자 피해를 키웠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 조치의 현장성 및 즉시성 강화를 위해 금융감독체계 개편 전이라도 금융감독규정 제·개정 제안권을 금감원에 부여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디지털 경제에서 언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데, 정부가 금융감독규정을 독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근래 국내 은행들은 국가 경제의 시스템 리스크를 통화당국과 금융당국 책임으로 미뤄놓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금리위험과 신용위험 등을 모두 고객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은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한 천수답 경영을 즐기고 있다. 은행권이 관치금융을 비난하지만 오히려 관치금융이 은행권을 도와주는 셈이다. 금융산업이 낙후되고 관치와 규제가 지속되는 악순환 속에서 정작 문제는 금융경쟁력이 자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치금융을 대체하는 금융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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