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해법, 착취는 쉽지

한겨레 2023. 5. 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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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의 그.래.도][김소민의 그.래.도] “너는 그저 하녀야. 나는 너한테 무슨 일이건 할 수 있어.” “필리핀은 쓰레기야.” “네 멍청한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가르쳤어?” 돌보는 아이까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사도우미를 욕했고, 그럴 때면 가사도우미는 아이에게 사과해야 했다.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한 가사도우미는 자기 방에서 자는 게 불안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집에 가두는 사례들이 이 보고서엔 빼곡하다.
지난 4월30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쇠사슬 행위극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김소민 | 자유기고가

지난 2월10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사는 카르티카 푸스피타사리(40)는 전화 한통을 받고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의 왼쪽 팔, 등, 배에는 칼로 그은 상처가 있다. 10년 전 홍콩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할 때 얻은 상처들이다. 홍콩 고용인 부부는 그를 다리미로 지지고 자전거 체인으로 때렸다. 어디에 신고하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다 고용인이 인도네시아로 돌려보낼까봐 2년을 참다 대사관에 알렸다. 고용인 부부는 3년6개월, 5년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인도네시아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10년 뒤 이날, 카르티카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한국 돈으로 1억4천여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받은 배상액으로 최고였지만 그는 “내가 입은 정신적, 물리적 피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여러 홍콩 언론에 말했다.

싱가포르의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인 ‘이주경제 인도주의기구’(HOME)는 지난해 10월 ‘보이지 않는 상처’란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이 겪는 정서적 학대를 담은 보고서다. “너는 그저 하녀야. 나는 너한테 무슨 일이건 할 수 있어.” “필리핀은 쓰레기야.” “네 멍청한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가르쳤어?” 돌보는 아이까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사도우미를 욕했고, 그럴 때면 가사도우미는 아이에게 사과해야 했다.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한 가사도우미는 자기 방에서 자는 게 불안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집에 가두는 사례들이 이 보고서엔 빼곡하다.

한국은 다를 거라 생각하나? 10년째 바뀌지 않는 고용허가제를 보라. 2020년 12월 캄보디아인 누온 속헹이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집에서 자다 숨졌다. 이후 정부는 몇가지 지침을 내놨지만 바뀐 건 거의 없다. 여전히 컨테이너를 ‘주택’이라며 이주노동자 한사람당 20만~30만원씩 월세까지 받는다. 지난달 30일 이주노동자들은 강제노동 금지, 사업장 이동의 자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보장 등을 요구하며 두 팔을 쇠사슬로 묶었다.

그나마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는다. 조정훈 의원(시대전환) 등은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으로 ‘월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을 발의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힘을 실었다. 사람이 하는 노동에 주기로 한 최저임금을 주지 말자니, 이들은 사람이 아니란 건가? 그들의 노동은 노동이 아니란 건가? 같은 사람인데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타자’로 규정하는 순간, 제도적 폭력은 시작한다. 극단적 학대는 이 폭력의 확장판이다.

왜 약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나? 착취는 쉽다. 이런 해법은 비윤리일 뿐 아니라 무능이다. 전세계 꼴찌를 다투는 싱가포르, 홍콩의 출생률을 고려하면 해법도 못 된다. 해법은 어렵다. 상상력이 필요하고 오래 걸린다.

2016년 소멸위기 5위로 꼽혔던 경남 남해, 그중에서도 고령화가 심했던 상주에 아이들이 모인다. 폐교 위기에 몰렸던 상주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대안학교로 바뀐 뒤다. 36명이던 초등학교 학생 수는 올해 3월 63명으로, 18명이던 중학교 학생 수는 92명으로 늘었다. 여기 아이들은 마을이 함께 키운다. 학부모들이 꾸린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농악대를 꾸리고 전시회도 하고 인문학콘서트도 연다. 돌봄공간 상상놀이터엔 마을 교사들이 있다. 저녁 7시까지 아이들이 아무 때나 들러 논다. 이곳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마을 구석에 꽃을 심고 은모래해변에서 쓰레기를 줍는다.

8년 전 초등학생 아이 둘을 데리고 이사 온 이종수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선 아이 키우는 게 크게 부담이 안 돼요. 학교랑 마을에서 돌봐주니 돈 들 데가 별로 없어요.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을 다 아니 안심하고 맡길 수도 있고요. 도시에선 아파트 평수 같은 거로 아이들끼리 차별하지만 여긴 그런 거 없어요.” 맞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다른 데서도 가능할까? 2016년 남해 상주에는 이런 공동체가 없었다. 지금은 있다.

아이를 낳을까? 이 질문은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나’라는 질문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해도 된다고 법으로 허용한 곳에서 당신은 아이를 낳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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