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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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것, 입은 것, 방문한 곳, 함께한 사람. 매 순간을 전화기 카메라에 담고, 그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고, 올라온 남들의 생활을 훔쳐보고, 그 '관음'의 누적 실적에 원작자는 존재가치를 획득한다.
지인들과 모임에도,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도, 실체적인 시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보다 전화기 너머 안면도 없는 타인의 '좋아요'에 더 눈이 가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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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먹은 것, 입은 것, 방문한 곳, 함께한 사람…. 매 순간을 전화기 카메라에 담고, 그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고, 올라온 남들의 생활을 훔쳐보고, 그 ‘관음’의 누적 실적에 원작자는 존재가치를 획득한다. 바로 인스타그램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유사한 에스엔에스(SNS)가 여럿 있으나 하나만 예로 든다)
잔소리꾼 어르신들이 쯧쯧 하며 걱정하는 요즘 애들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식사에서 할아버지는 첫 수저를 들기 전에 며느리의 인스타 사진 촬영을 위해 기다려주는 센스 정도는 갖춰야 하는 시대다.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인스타‘짓’은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모두의 손안에 카메라를 장착시킨 스마트폰이 겨우 15년 전에 출현했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는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모르는 이에게 노출하는 온라인 세계의 법도에 익숙해졌다.
왜 자신의 일상을 남에게 노출하고 싶을까. 지인들과 모임에도,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도, 실체적인 시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보다 전화기 너머 안면도 없는 타인의 ‘좋아요’에 더 눈이 가는 이유는 뭘까. 어른들이 주도하는 가족 모임 한구석, 전화기 속 그들만의 세계로 ‘유체이탈’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알 수 있다. 부모보다 자녀가, 노인보다 청년이, 상사보다 부하직원이, 남성보다 여성이 이 인스타‘짓’에 더 몰두한다는 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듯, 현실 세계에서 권력을 가진 이에게 물리적인 공간의 점유권과 주도권을 빼앗긴 사람들은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흘러들기 마련이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영향력을 넘어섰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고, 그래서 자기가 물리적 현실 공간에서 소외된 상대적 약자라는 진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 남들에게 충분히 대우받는 나이 지긋한 부자는 모르는 타인의 ‘좋아요’가 없어도 결핍없이 산다.
이런 현상을 인간 역사에 늘 존재했던 권력에 따른 불평등으로 해석하면 뻔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공간적으로 접근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가상공간에 몰두하는 습성은 오늘의 도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비춰주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 있되 각자의 세계에 고립돼 있는 상태를 ‘사회원심력’이 작용한다고 한다. 공항이나 기차역 대합실에서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티브이나 자기 전화기만 쳐다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이상하게도 여기선 주위 사람이 멀게 느껴진다. 필요 때문에 스쳐 갈 뿐 함께 있는 사람과 마주 보며 이야기하기도 어색하다. 반면, 동네 어귀 평상이나 카페의 야외테라스 같은 곳에서 전화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함께 하는 이의 실제 모습을 대하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회구심적’ 공간이다. 이 두 공간의 차이는 관리자와 사용자 중 누가 공간의 주도권을 가지느냐로 나뉜다. 사용자가 공간 주도권을 가지면 거짓말처럼 사람들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집중한다.
현실 세상에서 마주한 사람과의 실체적 관계보다, 사이버 세상에 이미지로 존재하는 사람과의 휘발성 있는 관계가 더 편하게 느껴지게 된 이유는 뭘까. 겨우 십수년 만에 많은 이가 스마트폰 화면 속에 매몰돼 버린 이유는 뭘까. 과연 그곳이 그만큼 가치 있어서일까, 아니면 점점 사회원심적으로 변하는 이 도시 어디에도 마음 편히 있을 곳이 없어 그곳까지 떠밀려 간 것일까. 진짜 문제는 인스타로 대변되는 온라인일까, 원심적으로 변해 현대인을 그곳으로 떠미는 오프라인일까. 우리는 댓글 달기 쉽고 말랑말랑한 가상공간에 열광하면서, 함께 부대끼고 사는 삶의 틀, 현실 공간이 우리와 더더욱 멀어지는 것은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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