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라이즈…지방대가 정부 ‘지방대 살리기’ 반발하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7월 120개 국정과제 중 하나로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이루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역과 대학 간 협력을 강화해 지역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내용으로, 윤 정부의 ‘지방대 살리기’ 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부도 발맞춰 ‘라이즈’(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글로컬 대학 30 추진방안’ 등 지방대 육성책을 발표해왔습니다. 그런데 정책이 나올 때마다 지역에서는 지방대를 살리긴커녕 위태롭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옵니다. ‘지방대 살리기’ 정책을 두고 ‘지방대 죽이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봤습니다.
지원책이라는데 “지방대 살생부” 비판
교육부는 올해 10개 대학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비수도권 30개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해 5년간 1개 대학에 1천억원씩 지원합니다. 대학 내·외부 경계를 허물어 다양한 융합을 시도하고 지역산업과 협력하는 등 혁신할 대학을 뽑아 투자한다고 합니다. 교육부가 혁신 사례로 대학 간 통합을 통한 캠퍼스 간 자원 공유나 학과 통합 등을 제시하면서, 국립대를 중심으로 통폐합 움직임도 활발해졌습니다. 안동대-금오공대-경북도립대, 강원대-강릉원주대, 충남대-한밭대, 부산대-부산교대 등이 통폐합을 논의 중입니다.
대학에 파격적인 규모의 재정을 투자하는 정책인데, 지역에서는 적자생존 경쟁이 심해질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나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일부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이라 글로컬대학에 선정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도태될 수 있다는 겁니다. 송주명 한신대 교수는 “안 그래도 학생이 부족한데 ‘글로컬대학에 떨어졌다’는 낙인까지 찍히면 회생 경로를 찾기 어려워진다. 대학은 그 자체로 지역 발전을 추동하는 역할을 해, 없어지면 지역에 미칠 타격도 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부 사립대에선 무력감까지 읽힙니다. 이종복 목원대 교수는 “사립대는 대개 재단이 달라 통합도 어렵고 대전만 해도 특화된 산업이랄 게 없다”며 “뾰족수가 없지만 떨어지면 학생 모집이 더 불리하니 일단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방대 정책의 다른 한축인 라이즈 사업을 두고도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2025년부터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의 절반 이상에 대한 집행 권한을 교육부에서 지자체로 이관하는 내용인데요. 그동안 교육부가 직접 사업 특성에 맞는 대학을 정해 지원했다면, 라이즈 체제에서는 지자체가 대학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교육부가 그에 맞는 예산을 통째로 넘겨줍니다. 지역과 대학의 연계를 강화해 지방대 발전을 촉진한다는 목표입니다. 하지만 지자체가 제대로 대학 발전을 이끌 수 있을지는 물음표입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3∼4명으로 구성된 ‘대학협력팀’에서 지방대 관련 업무를 담당할 정도로 대학을 지원할 인력·역량·경험이 부족한데, 갑자기 권한이 주어졌을 때 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교육부가 지자체에 지방대 관리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지방대 정원 확대에도 ‘울상’ 왜?
교육부가 지난 27일 2024학년도부터 전국 대학 22곳에서 첨단분야 학과 정원을 1800여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도 논란입니다. 비수도권 12개 대학에서 1012명, 수도권에선 10곳에서 817명이 순증합니다. 수도권 정원이 순증한 것은 23년 만의 일입니다.
비수도권 대학의 정원이 더 많이 늘어나고, 신청 인원 대비 승인 비율도 77.4%(수도권은 14.2%)로 높은데, 지 방대는 울상입니다. 핵심은 수도권 정원 증원에 있습니다. 이미 수도권 대학으로 학생들이 몰려들다 보니 지방대는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첨단학과도 예외는 아닙니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반도체 학과 충원율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학 22곳(지방대 16곳) 가운데 정원 모집에 실패한 7곳 모두 지방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방대 정원을 얼마나 늘리는가에 관계 없이 수도권 정원이 늘어나는 것 자체로 인재 유출은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대학의 정원은 총량 자체를 늘리는 순증도 있지만, 결손 인원과 편입학 여석을 활용해 늘어나기도 하는데요. 이런 결원을 통한 정원 조정 규모만 놓고 보면 수도권의 증원 규모가 더 크다는 점도 우려를 가중시킵니다. 2024학년도에 전국에서 결원을 활용해 첨단학과의 정원을 1040명 늘리는데, 수도권에서 731명, 비수도권에서 309명 늘어 70%가 수도권에서 늘어납니다.
한 지방대 총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정부는 20년 이상 지켜온 둑을 무너뜨린 책임을 져야 한다”며 “(수도권 증원 817명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라, 내년부터 지방대 미달 사태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교육부의 지방대 육성 정책이 ‘지방대 죽이기’가 아님을 연일 강조합니다. 지난 1일 광주·전남 지역대학 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는 “(글로컬대학 사업은) 30개의 대학만 집중 지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30개의 선도 모델을 만들어 지역대학의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라며 “(라이즈 사업도) 교육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정부가 중심이 되는 범정부적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방대의 존폐 위기나 수도권으로의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방안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정부 차원에서 지방 소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지방대 육성 방안을 내놔야 한다”며 “그런 밑그림 없이는 지방대를 육성할 근본 대책은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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