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입자의 알권리' 아직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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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계약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지난해 기자가 전세대출을 받기 위해 상담을 받을 당시 관련 서류를 검토한 은행 직원은 이같이 말했다.
서류만 본 은행 직원으로서는 증축을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으며, 실제 빌라를 방문해서도 줄자를 들이대지 않는 이상 확인하기 어려웠다.
개인정보 보호로 인해 집주인의 세금이 얼마나 밀렸는지는 세입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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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기자가 전세대출을 받기 위해 상담을 받을 당시 관련 서류를 검토한 은행 직원은 이같이 말했다. 빠진 머리숱과 주름살에서 오랜 경력이 엿보이는 그는 기자가 전세계약을 고려하고 있는 빌라는 융자가 전혀 없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대출도 잘 나올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그 말을 믿고 계약했다면 그대로 깡통전세를 떠안을 뻔했다.
자세히 알아보니 해당 빌라는 공시지가가 낮아 경매로 넘어갈 경우 전세보증금을 모두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의 원인은 불법증축이었다. 실평수보다 적은 등기부등본상 평수에 평당 공시지가를 곱하면 상당히 낮은 가격이 나왔다. 서류만 본 은행 직원으로서는 증축을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으며, 실제 빌라를 방문해서도 줄자를 들이대지 않는 이상 확인하기 어려웠다. 또 당시에는 융자가 없어도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세입자의 전세금이 아니라 집주인의 체납세금이 최우선으로 변제됐다. 개인정보 보호로 인해 집주인의 세금이 얼마나 밀렸는지는 세입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 전세사기를 취재하면서도 당시 기자가 운이 좋아서 사기를 피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 중 만난 깡통전세 세입자 중 한 명은 집주인이 계속 바뀔까 봐 불안해서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매일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에게는 구체적인 통보도 없이 전세계약을 하기 전날 집주인이 바뀌어서다. 그는 "원래 집주인에게 부동산 컨설팅업체가 접근해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에 집을 팔아주는 대신 업체에서 매물을 독점하는 식으로 운영한다"며 "브로커가 융자를 없애주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대출을 받기 쉽게 해 세입계약을 받은 뒤 그 전후로 바로 집을 팔아버린다"고 설명했다.
전세사기가 이슈가 된 것은 오래지만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가 나온 뒤에야 대책이 거론되는 모양새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선순위 보증금과 체납에 관한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2월에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여전히 집주인이 전세기간 중 바뀔 경우 반드시 이를 세입자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법안은 없다. 세입자가 사기를 피해갈 예방책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yesyj@fnnews.com 노유정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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