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옛 신문광고] 첫 국산 튜브형 럭키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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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일본 생활화학 기업 '라이온'이 '라이온 치마'라는 치약을 국내에 들여와 광고를 하며 판매했다.
광복 후 라이온 치마마저 판매망이 끊기고 서민들은 대부분 소금으로 치약을 대신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락희화학공업사를 경영하던 LG그룹 창업주 구인회가 치약 개발에 나섰다.
외제보다 값이 3분의 1이나 싸고 품질이 비슷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럭키치약은 출시 3년 만에 판매 1위에 오르며 치약 대중화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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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희화학은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을 생산한 기업이기도 하다. 럭키크림 뚜껑이 잘 깨져 반품이 잦았는데 안 깨지는 용기를 찾다 플라스틱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동동구리무로 번 돈 3억원으로 전쟁 중이던 1951년 11월 부전동으로 공장을 이전해 국내 플라스틱 시대를 열었다. 락희화학의 첫 플라스틱 제품은 칫솔과 빗이었다. 그런데 치약이 귀하니 칫솔이 팔리지 않았다. 치약을 만들어야 했다. 구인회는 외제 치약 성분을 분석하고 품질이 뒤지지 않는 치약을 만들고자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우리의 목표는 콜게이트"라고 했다. 드디어 1955년 가을 튜브 치약 생산에 성공해 신문에 광고를 냈다(사진·동아일보 1955년 6월 10일자).
"미국 원료, 미국 처방, 독일 기계로 된 제품이므로 품질이 미제와 꼭 같습니다. 향과 맛이 참 좋습니다. 오래 두어도 마르지 않고 얼지 않습니다"라고 광고했다. 만일 사용 중에 마르거나 변질하는 경우에는 돈을 돌려주겠다고도 했다. 그래도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임직원들은 치약 모형을 트럭에 부착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선전하고 치약을 나눠 주었다. 외제보다 값이 3분의 1이나 싸고 품질이 비슷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럭키치약은 출시 3년 만에 판매 1위에 오르며 치약 대중화를 이끌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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