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포럼] 가짜뉴스와 지성의 타락

김충제 2023. 5. 4. 18:1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달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것을 두고 야권 원로 정치인이 자신의 소식통을 근거 삼아 준비부족의 결례라는 취지로 비판하였다.

흔히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음험한 의도를 가진 '인터넷 폐인'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이제는 정치인, 언론인 등 이른바 '지성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도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것을 두고 야권 원로 정치인이 자신의 소식통을 근거 삼아 준비부족의 결례라는 취지로 비판하였다. 이에 대통령실은 즉각 '무책임한 모함이며 반국가적 작태'라고 반박하였는데 현장영상을 보면 대통령실의 설명이 전후 사정에 맞는다고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력 정치인이 국익에 해가 될 수도 있는, 확인도 되지 않는 정보를 마치 사실인 양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뜨리는 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정치적 이익 앞에 사실 확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흔히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음험한 의도를 가진 '인터넷 폐인'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이제는 정치인, 언론인 등 이른바 '지성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도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이 같은 현상을 우리는 목격한 바 있다.

얼마 전 미국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터커 칼슨이 해고되었다. 칼슨은 2020년 미 대선은 투·개표기 회사 도미니언이 관여된 부정선거였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 바 있고, 이로 인해 폭스사는 도미니언으로부터 소송을 당하여 약 1조원대(약 7억9000만달러) 명예훼손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최근 합의한 바 있다. 칼슨의 해고 이유에 대한 회사의 공식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이 피해배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렇듯 가짜뉴스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세계 도처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인 자유선거에 거짓정보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경우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된다. 또한 대량거래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현대 금융시장에 있어서도 가짜뉴스는 중대한 위험요소이다. 경제가 조그만 충격에도 취약한 요즈음과 같은 시기에는 가짜뉴스로 인해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이 방해받을 수 있다. 따라서 가짜뉴스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중국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가 거짓으로 얼룩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보다 자신들의 체제가 훨씬 효율적이고 정의롭다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불순한 목적을 가진 가짜뉴스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지만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이제 그 확산속도가 훨씬 빨라졌고, 이는 다시 가짜뉴스를 확산코자 하는 동기를 강화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사회라면 가짜뉴스의 생명력은 길지 않을 것이고 그 사회의 '지성'을 구성하는 핵심계층이 가짜뉴스의 생성과 확산을 막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정치의 극단화 현상과 함께 지성인 계층이 진영의 이익을 위해 가짜뉴스를 부추기고 있으니 가히 지성의 타락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 기술을 비판하기 위해 구글 부사장직을 사퇴한 AI계의 대부 제프리 힌튼 박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AI가 창조하는 가짜 콘텐츠가 너무 많아 일반인이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제 지성의 타락과 기술 발전이 맞물리면서 가짜가 판을 치는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마저도 든다. 우리 미래세대에게 천국은 아니더라도 가짜로 도배된 지옥을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암울한 미래예측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시민사회가 타락한 '지성인'들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