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스벅이 100톤 주문 ‘K-말차’, 근데 더 팔수가 없다고? [푸드360]
[헤럴드경제(하동)=김희량 기자] 5년 만에 2배로 늘어난 한국 고형차(茶) 수출의 주역은 하동녹차연구소에서 스타벅스 본사로 수출하는 ‘가루녹차(말차)’다. 그러나 본격적인 수확이 시작되는 5월 하동의 고심은 어느 때보다 깊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최근 2~3년 동안 잦아진 응애·서리로 첫물차(한해 중 처음 수확하는 차) 생산이 쉽지 않다. 세계로 퍼진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늘어나도 생산량에 발목이 잡혀 더 팔 수가 없는 상황이다.
3일 기자가 직접 찾아간 하동에서는 첫물차 수확을 앞두고 ‘해가림 재배’에 들어가야 하지만 볕가리개를 씌우지 못한 차밭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해가림 재배는 일정 기간 빛을 차단하는 재배기법이다. 햇빛을 가리면 오히려 차나무의 엽록소가 더욱 분출돼 녹색도와 감칠맛이 높아진다. 평년보다 기온이 내려간 탓에 서리·냉해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싹을 틔운 여린 잎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곳들이 발생했다. 성장이 더딘 차밭은 볕가리개를 씌울 수 없다.
이같은 냉해 피해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K-말차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말차를 해외 판매하려고 해도 물량이 부족해 팔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21년 전국 녹차 생산량은 3576톤으로 2020년 대비 11.9% 감소했다. 그해 1월 나흘 연속 영하 7도 이하로 내려간 기록적인 한파가 원인이었다. 한파가 발생하면 녹차가 붉게 변해 사실상 생산이 어렵다. 4~5년 주기로 찾아왔던 냉해의 주기가 최근 2~3년 사이 더욱 잦아졌다. 1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한국 최초 시배지 하동에서는 약 10년 전 동해를 입고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천년 차나무’가 고사(枯死)하기까지 했다.
찻잎을 갈아 만드는 K-말차는 현재 성장기다. 2017년부터 미국, 캐나다 등 스타벅스로 100톤 납품계약을 맺기 시작하면서 2021년 300만 달러 수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20년 가까이 하동군과 하동녹차연구소가 노력한 결과다. 연평균 5%가량 수출량이 늘어난 K-말차를 중심으로 5년 전(2017년) 761만 달러였던 한국 고형차 수출액은 2021년 1587만 달러로 약 2배 커졌다.
덕분에 한국은 차를 ‘사 오던 나라’에서 차를 ‘파는 나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차(茶)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3~4배 많았다. 가루차는 티백과 달리 제과류, 화장품 등 각종 제품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게다가 수출 부가가치가 높다. 2021년 기준 가루녹차의 국내 출하량은 전체의 3.6%임에도 출하액 기준 9.6%를 차지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에서 수출되는 차류의 절반 이상은 하동이 차지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차류 수출액은 지역별로 하동 55%, 제주 17%, 보성 7% 순이었다. 생산량이 급감할 경우에는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타 지역 유기농 녹차를 블렌딩해 K-말차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기온이 불안정해지자 지난해는 전년 대비 수출량이 소폭 줄었다. 하동녹차연구소 가공농장 관계자는 “하동녹차를 사고 싶다는 바이어들의 문의가 빗발치지만 기온이 불안정해지면 원료 확보가 전쟁처럼 어려워진다”면서 “미국 스타벅스는 물론 스웨덴, 볼리비아, 브라질까지 수출을 늘려 온 말차인데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동 말차는 한국 최초의 시배지이자 고도가 높은 지리산 자락에서 유기농으로 생산돼 맛과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동군의 지원을 받는 재단법인 하동녹차연구소의 가공공장에는 12억원 상당의 살균기 1대와 미세한 가루로 분쇄하는 6대의 비즈밀이 1시간 360㎏의 말차를 생산한다.
이곳에서는 연구소가 수매한 생잎을 고온고압에 찐 뒤 뜨거운 열기로 건조를 시키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때 원적외선 건조를 통해 찻잎의 녹색을 유지한다. 잎줄기와 잎맥를 분리한 후 조분쇄를 거친 뒤 살균기를 통과해 비즈밀실에서 미세한 말차로 탄생한다. 프리미엄 말차가루도 맷돌실에서 별도로 생산이 된다.
김종철 하동녹차연구소 책임연구원(박사)은 “하동은 산악지대라 물빠짐이 좋고 식양토가 거름과 물을 오래 잡아둘 수 있는 보비력(保肥力)과 보수력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또 하동의 차나무(카멜리아 시넨시스)는 재래종이기에 녹차 맛이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특성이 있다. 일제시대에 조성된 보성은 재래종과 일본종이 혼합된 곳이 많고 제주의 경우 ‘야부기다’, ‘후슌’ 등 일본 품종이 대다수다.
하동 말차의 수출량을 지속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현행 ‘전통 방식의 차밭’과 ‘대단위 기계화 차밭’을 투 트랙으로 운영해 생산량을 확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수확 기간 손으로 찻잎을 따는 노동력도 부족해지고 있다. 반면 하동과 달리 오설록 등으로 유명한 제주는 평지가 많고 차밭 규모가 커 대량 기계화가 가능하다. 제주의 단위당 차 생산량(kg/10ha)은 하동보다 최소 2~3배 이상 많다.
농가를 지원하고 K-말차 수출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하동에서는 어렵게 만들어온 ‘K-말차’의 위상을 지켜내기 위한 고군분투가 계속되고 있다. 경남도와 하동군은 4일부터 내달 3일까지 차 분야 최초 정부 승인 국제행사인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를 진행한다. 엑스포에서는 한국과 세계 차의 역사와 문화, 차 효능과 음용법 등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행사와 더불어 수출 확대를 위한 판로개척법을 소개하는 ‘산업 융복합관’이 열린다. 약 135만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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