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뜻 잊지 않겠다”···‘분신사망’ 노동자 빈소 집결한 노동계, 정부와 총력투쟁 예고

김세훈·김송이 기자 2023. 5. 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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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노동절인 지난 1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분신해 이튿날 사망한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지대장(50)의 빈소가 4일 서울에 차려졌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빈소를 찾아 “정부의 건폭몰이와 경찰의 무리한 수사가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불렀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고 양 지대장의 운구차는 이날 오전 11시50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도 하나둘 병원을 찾았다. 이들은 ‘열사정신계승’이 적힌 검은 머리띠를 매고 굳은 표정으로 빈소로 들어갔다. 장례식장 3층에 마련된 빈소에 위패와 영정사진이 놓이자 한 조합원은 다른 조합원의 어깨에 기대어 울기도 했다.

오전부터 빈소를 지킨 이들은 “정부의 ‘건폭’몰이가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했다. 강한수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정부가 전국 건설노조의 자금내역 등을 다 뒤져봐도 나오는 게 없자 지금까지 현장에서 늘 이뤄지던 단체협약을 트집잡았다”고 했다. 이어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하지 않은 활동들도 마치 민주노총의 잘못인 것처럼 여론몰이를 했다”며 “양 동지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자신이 두 명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김정배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장은 “현장에서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처벌불원서까지 제출했음에도 경찰은 결과를 미리 정하고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다”며 “(양 동지는) 평소 남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하던 사람이었다. 영장청구 뒤에 양 동지에게 전화했을 때 ‘걱정 안 한다’고 밝은 모습을 보였는데 속으로는 얼마나 억울해하고 있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당연히 진행하는 건설사와 교섭을 두고 한 번 찾아가면 교섭이고 이후에 두 세 번 찾아가면 채용 강요라며 억지 주장을 펼쳤다”며 ”우리가 10번, 20번 찾아가지 않으면 채용을 안 해주는 건설 현장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했다.

김현웅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사무국장은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이 노골화된 후에 현장에서 사측이 교섭 대상의 연락처 제공을 거부하거나 녹음기부터 들이미는 등 홀대를 많이 당했다. 양 지대장도 팀장으로서 이런 부담감이 컸던 것으로 안다”며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계속해서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살기 위해 정권퇴진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오후 4시40분쯤 빈소에 도착했다. 그는 “작년부터 진행된 건설노조에 대한 토벌대식 탄압으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 2일 이후로도 건설노동자를 구속하고,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을 하는 등 탄압을 멈추지 않고 있다”며 “양 동지의 유지를 받들어 자신의 정권 지지기반 유지를 위해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부와 끝장 투쟁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후 5시10분쯤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국가의 과도한 압박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대통령께서 직접 빈소를 조문하고, 앞으로 국가의 권력행사 때문에 국민이 죽는 일 없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오후 5시46분쯤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유가족들은 오후 5시56분 빈소에 도착했다. 이들은 정의당 의원들과 만나 “가족들을 놔두고 가려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싶다”며 “유서의 내용은 단순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움 없는 떳떳한 아빠가 될 수 있게 억울함을 풀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상정 의원은 “노동자들도 자존심이 있는 인격체인데 정부가 정치적으로 매도하고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유가족들에게 “정부의 탄압으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양 지대장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양 지대장의 유지를 잘 받들어 억울함 풀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부탁드린다. 우리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건설노조는 이날 빈소 건물 밖 광장에서 양 지대장을 추모하는 촛불 문화제를 열고 책임자 처벌과 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고인을) 모시고 올 때 장례를 치르려고 모시고온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을 그대로 두면 건설 노동자들이 노조로 만들어온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투쟁을 결의하고 서울로 모시고 왔다”며 “이 추모제는 추모제가 아니라 투쟁을 하기 위한 첫 시발점이라고 다들 마음을 먹어달라”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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