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짜리 딜에도 10곳 몰려"… 투자업계에 돈 돌기 시작했다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3. 5. 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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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풍 부는 사모펀드 시장 … 22조 M&A 쏟아져
작년 9%대 인수금융 금리
올 들어 6%대로 안정세
사모펀드 대기자금 17조 달해
SK해운 탱커선·롯데카드 등
몸값 2조원대 매물 쏟아져
하반기 구조조정딜 봇물 예고

사모투자펀드(PEF)가 쥐고 있던 22조원 규모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기업 인수·합병(M&A)을 위한 큰 장이 활짝 열렸다. 기업 스스로 내놓은 매물까지 합치면 22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의 M&A 기회가 열린 것으로 평가된다. 한동안 움츠렸던 한국 기업이 M&A를 통해 외연 확장에 나설지 주목된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PEF가 내놓은 조 단위 매물 중 가장 먼저 본입찰이 시작되는 건 반도체 등 산업용 가스업체 에어퍼스트 소수지분 거래다. IMM프라이빗에쿼티(PE)는 다음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브룩필드자산운용 등 적격인수후보(숏리스트) 4곳 이상을 대상으로 본입찰을 진행한다. 1조원대라는 높은 예상 매각 가격에도 불구하고 3월 진행한 예비입찰에는 10곳 안팎이 뛰어들었다.

IMM PE는 2019년 에어퍼스트 지분 100%를 1조3000억원에 사들였으며 이번에 내놓은 지분은 30%다. 2019년 1797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4606억원으로 불어날 정도로 고속 성장하고 있는 데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어 우량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IMM PE는 이 밖에도 6000억~7000억원대 현대LNG해운과 2000억원대 에이블씨앤씨의 경영권 매각 작업도 진행 중이다.

다양한 매물을 내놓은 또 다른 PEF 운용사로는 한앤컴퍼니(한앤코)가 있다. 먼저 SK해운 탱커선(유조선) 사업부에 대한 매각 작업을 추진 중이다. 한앤코가 2018년 SK그룹에서 1조5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이 회사는 국내 1위 탱커선 사업자다. SK에너지, HD현대오일뱅크 등 대형 정유사와 장기 운송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이 매물의 매력으로 꼽힌다. 매각 측은 2조~3조원을 받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앤코는 이 밖에 쌍용C&E 자회사 쌍용레미콘(5000억원)과 케이카(5000억원)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7조원대 이상 매매가격이 언급됐으나 잠정 중단했던 한온시스템 매각도 조만간 재개할 것으로 관측된다.

모건스탠리PE도 이달 중순 전주페이퍼 예비입찰을 진행한다. 글로벌세아그룹, 한국제지를 포함한 국내외 제지 관련 기업과 대형 PEF 운용사가 참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상은 전주페이퍼와 열병합발전 자회사인 전주원파워 경영권이다. 모건스탠리PE는 전주페이퍼의 폐지·폐목재 활용도를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 전주원파워의 경쟁력을 높였다. 지난해 전주페이퍼 매출은 6655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거래 가격은 8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수 후 보유 기간이 길어지며 매물로 나올 것이 확실시되는 PEF 포트폴리오도 있다.

PEF는 보통 인수 후 5년 무렵에 매각을 시도한다. 매각가 1조5000억원이 예상되는 여기어때는 CVC캐피탈이 2019년 인수한 기업이다. CVC캐피탈 인수 전에는 116억원 손실을 냈다. 2019년 흑자 전환해 지난해에는 영업이익 300억원을 기록했다. 근래 들어 여행업이 회복되는 추세라 매각 타이밍으로 적절하다는 평가다.

JKL파트너스가 보유한 롯데손해보험도 연내 매각이 유력한 포트폴리오다. 2019년 1조원에 롯데손해보험을 인수한 JKL파트너스는 수익성이 낮은 계약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자동차보험 등 수익성이 낮은 계약 비중은 줄이고 장기 보장성보험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왔다. 보험업 새 회계기준에 따른 회사 순자산이 1조5000억원대인 데다 보험계약의 미래 수익성을 판단하는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도 약 1조8000억원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매각가가 3조원에서 시작할 것으로 내다본다.

PEF 외에 기존 대주주가 내놓은 매물도 즐비하다. 거래 가격으로 4000억원대가 예상되는 ABL생명, 3000억원이 언급되는 루트로닉, 1500억원이 거론되는 피자나라치킨공주 등이다. PEF가 내놓은 매물에 기업발 매물까지 합치면 도합 23조원 이상의 M&A 시장이 열릴 것으로 집계된다.

여기에 대기업 계열사나 사업부 매각, 세대교체를 앞둔 중소·중견기업의 사업 재편, 부실 자산 매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곳곳에서 구조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되면서 추가 매물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일부 주요 그룹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 매각을 타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주춤하던 국내 M&A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을지 주목된다.

매일경제 레이더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M&A 거래 규모(50억원 이상 경영권 거래 기준)는 39조4277억원으로 전년 71조5030억원 대비 45% 급감했다. 통상 3~4% 수준이던 M&A 금리가 최대 9%까지 올라 PEF의 차입 거래를 어렵게 했고, 매물 가격에 대한 매수 측과 매각 측 눈높이 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매매가 좀체 성사되지 않았다.

특히 PEF들이 보유 지분 매각대금을 활용해 또 다른 기업이나 사업부 인수에 적극 나서면 거래가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PEF 운용사가 조 단위 펀드를 조성한 이유로 펀드 소진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주요 운용사의 신규 사모펀드 규모는 16조~17조원에 달한다. 장재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대기 자금이 많다는 것 자체는 M&A가 체결될 가능성을 높인다"며 "인수 측이 원하는 퀄리티를 맞출 수 있는 매물이 나오기만 한다면 충분히 M&A가 가능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로 M&A가 성사되는 것은 금융시장이 완전히 회복되는 하반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대준 삼일PwC 딜 부문 대표는 "다양한 구조조정 거래는 올 하반기에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 변호사는 "결국 매각 측과 인수 측 눈높이가 맞아야 딜이 성사된다"며 "아직은 보수적인 접근이 꽤 있다"고 전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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