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기니 독재자의 딸이자 김일성의 양딸···평양에서 온 흑인 소녀[시스루 피플]

최서은 기자 2023. 5. 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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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혼 흑인 소녀> 표지I덕워스 북스

1980년대에 자란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모니카 마시아스도 연말이 되면 아버지가 주실 새해 선물에 들떠 있곤 했다. 매년 12월31일, 그녀의 기숙학교엔 아버지가 보내준 과일과 음식 바구니 선물이 어김없이 도착했다. 반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선물을 보낸 모니카의 아버지가 다름 아닌 북한의 초대 최고지도자 김일성이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독재자의 딸. 모니카 마시아스(51)를 수식하는 말이다. 얼마 전 영어 회고록 <평양에서 온 흑인 소녀>를 출간한 그는 엘파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모니카는 책에서 “나중에 내 친아버지와 두번째 아버지인 김일성에 대한 서구의 평가를 알게 됐을 때 그야말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정체성마저 흔들렸다”고 말했다.

그의 친아버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는 1968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이다. 11년 동안 적도기니에서 독재 정권을 이어온 프란시스코 마시아스는 쿠데타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자 세 자녀를 적도기니의 우호국이었던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모니카는 7세였던 1978년에 언니, 오빠와 함께 평양으로 떠난다. 그의 친아버지는 그 해 쿠데타로 조카에 의해 처형됐다. 북한으로 망명을 온 그는 16년 동안 김일성 일가의 보호 아래 성장하게 된다.

모니카는 친아버지와 적도기니에서의 생활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아마 트라우마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에서 적도기니의 삶과 모국어인 스페인어도 잊어버린 채 한국어만 사용했다.

평양의 만경대혁명학원 인민학교에 다닌 모니카는 학급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다. 다른 학우들처럼 사격, 야전 훈련 등 군사훈련을 포함한 당 간부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이후엔 김일성 주석의 추천에 따라 피복학과 전공을 택해 평양 경공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모니카는 어느 순간 자신이 기계적으로 훈련받는 세상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결국 그는 대학 졸업 후 스페인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김일성은 그녀에게 “모니카야, 그 가혹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 수 있을 만큼 강하냐”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후 모니카는 스페인, 미국,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갔다. 그는 “나는 미국이 북한을 파괴하려는 사악한 나라라고 믿으며 자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대학 시절 미국인을 처음 만나고 겁에 질려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생활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그는 자유와 개방성, 다양성 등에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모니카가 북한을 떠나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자본주의’보다도 인종차별이었다. 그는 북한에서보다 유럽에서 인종차별이 훨씬 심했다고 밝혔다. 북한에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신기해하거나 흑인이라고 부르는 수준의 피상적 인종차별이었지만 서양의 인종차별은 훨씬 체계적이고 구조적이었다고 밝혔다. 모니카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와 입장이 같지 않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했다.

2007년엔 서울에서도 생활했다. 모니카는 서울의 한 의류회사에서 3년간 일했다. 이 때문에 그는 평양과 서울 억양이 섞인 한국어를 구사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엔 한국어 책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를 출간했다. 그는 그동안 여러 인터뷰를 통해 남한과 북한은 체제는 다르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성격 등이 거의 똑같다고 말했다.

모니카는 현재는 런던에 정착해 살고 있다. 그는 런던의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런던의 한 옷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모니카는 북한이 아닌 쿠바로 보내진 자신의 또 다른 형제는 다시 적도기니로 돌려보내져 끔찍한 감옥에 수감됐지만, 김일성은 자신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며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때 단지 어린 소녀였다”며, 양아버지 김일성에 대해 “같은 이념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나를 돌봐준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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