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도 힘들어요"… 두번 외면받는 베이비박스 아기들

김혁준(kim.hyeokjun@mk.co.kr) 2023. 5. 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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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에도 여전한 그림자
위기영아 보호소로 지정 안돼
출생신고 못해서 지원 못받아
신고 늦을수록 입양률도 하락
보육원 가기 전까지 사각지대
관련법 새로 만들어 해소해야
미혼부모 경제적 도움도 시급

# 올봄 어느 날 저녁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에 위치한 베이비박스의 알림이 울렸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상담사는 외투도 걸치지 않고 곧바로 뛰쳐나갔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긴 엄마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기를 돌보는 자원봉사자들은 그사이 베이비박스에서 곧장 아이를 꺼내 따듯한 센터 안으로 들였다.

아이의 엄마 A씨는 병원에서 출산하지 못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임신 사실을 안 아이 아빠는 연락을 끊고 도망갔고 아이 엄마는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막막한 상황이었다. 주사랑공동체 위기영아보호상담센터는 A씨가 법원에서 유전자검사를 받고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동안 긴급 지원을 약속하고 아이를 돌봤다. 아이를 못 키우겠다던 A씨는 상담을 통해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을 바꿨다.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에는 올해 4월까지 32명의 아이가 맡겨졌다. 2010년부터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들은 2073명에 달한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에도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는 역할을 해왔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 불합치로 결정하면서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이들도 2019년 170명에서 2022년 106명으로 점차 줄어들었지만 베이비박스는 아직 생명의 마지막 보루로서 운영 중이다.

베이비박스에 찾아오는 부모의 약 70%가 미혼인 상태로 경제적 지원과 상담을 필요로 한다. 병원 외 출산을 하는 비율도 해마다 10%에 달해 법률 지원과 의료 지원이 필수적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 측은 아이의 출생신고와 관련된 법령이 마련되지 않아 어려움을 호소했다. 미혼모이거나 이혼 소송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이는 입양과 의료 등을 위해 일가창립(성·본 창설)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주사랑공동체처럼 위기영아 일시보호소로 지정되지 않은 곳과 입양 전 위탁가정의 경우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이들은 아이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보육원으로 가게 되면 출생신고가 8~9개월가량 늦어짐에 따라 입양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인 65명은 출생신고 없이 시설로 보내졌다.

실제로 2019년 감사원의 감사에 따르면 2014~2018년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의 시설보호율은 96.6%로 가정보호율 3.4%를 크게 웃돌았다. 시설로 보호 조치된 후 가정 보호로 변경된 아동도 13.8%에 그쳐 대부분의 아동은 복지시설에 장기 보호됐다. 유기 아동의 가정형 보호 조치라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임선주 주사랑공동체 팀장은 "아이들의 출생신고는 일괄적으로 보육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은 3개월에서 8개월이 지나야 출생신고가 이뤄진다"며 "지자체로부터 권한을 받으면 아이들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나 현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의 입양이 늦어질수록 입양을 원하는 가정에서 애착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베이비박스가 정부가 승인한 일시 보호소로 지정될 경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영아 유기를 부추긴다는 논란을 우려해 아동보호소 지정이 번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황민숙 위기영아보호상담지원센터 센터장은 지난해 7월 법원이 베이비박스를 통한 영아 유기 사례를 무죄로 판결한 것을 언급하며 "이곳에 찾아오는 엄마들은 아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0세에서 24개월의 영아를 위탁하겠다는 가정이 적은 현실에서 사각지대 속 엄마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정부에서 신경을 더 써 달라"고 요청했다.

[김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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