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교섭에 ‘건폭’ ‘공갈’…이건 혐오살인이나 다름없다”
“건설업계 특수성 이해 없이 프레이밍…
교섭이 협박이면 사용자도 공갈범인가”
정부 ‘건폭’ ‘공갈’ 프레임엔 “혐오살인”
“건설노조가 왜 고용을 두고 단체교섭을 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업계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대통령부터 정부 부처, 수사기관까지 무작정 ‘건폭’ ‘공갈’로 몰아가니 이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이건 ‘혐오살인’입니다.”
4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법률원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난 권두섭 법률원 변호사(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 대표)는 노동절에 벌어진 ‘건설노동자 분신’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은 지난 1일 노조활동에 대한 검찰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양 지대장은 지역 건설사들과 교섭 과정에서 조합원 고용과 노조 전임자 활동비 등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공동공갈’ 피의자가 돼 수사를 받아 왔다. 양 지대장은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지난 2일 숨졌다.
2003년 ‘건설노조 원청 교섭 사건’을 포함해 오랫동안 건설업계 노사 문제를 다뤄 온 권 변호사는 정부가 “건설업계의 특수한 노사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형법의 잣대만 들이밀며 정상적 교섭까지 모두 불법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문제 삼는 건설노조의 조합원 고용과 전임비 요구는 일용직, 불법하도급 등이 판치는 업계 특성상 정당하고 합법적인 요구”라며 “정부는 업계의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오히려 프레이밍으로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건설노조가 조합원 채용·전임비 요구하는 이유는?
-정부는 건설노조가 업체들과의 교섭에서 조합원 채용, 전임비 등을 강압적으로 요구했다며 수사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인가.
“왜 고용에 관한 단체교섭을 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첫째, 건설노동자들은 어떤 회사에 상시 고용돼 있지 않다. 건설 현장은 생겼다 사라졌다 하고, 노동자들도 짧게는 1일이나 3개월 등 단기적으로 고용과 실업을 오간다. 그러니 이 노동자들의 자연스러운 요구는 고용이다. 노조란 소속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이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 도모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기에, 건설노조의 경우 일상적 고용불안 해소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둘째로 불법하도급 문제가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건설업은 원청에서 전문건설업체로 단 한 차례만 도급이 가능하다. 그 밑으로는 불법이다. 그런데 건설 현장에서는 이 법이 안 지켜진다. 전문건설업체가 건설노동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이른바 ‘십장’ ‘오야지’ 등에게 또 불법하도급을 준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작년 조사를 보면 이런 ‘인맥 고용’이 74.9%다.
단계가 내려갈수록 중간착취가 심각해진다. 대표적인 예가 광주 학동 아파트 붕괴사고다. (원청인)현대산업개발이 조합으로부터 1평당 공사비 28만원을 받았는데, 그 아래 한솔이라는 업체에 평당 10만원에 하도급을 줬다. 한솔은 또 백솔이라는 곳에 평당 4만원에 하도급을 줬다. 처음 발주자가 산정한 공사비의 84%가 삭감됐다. 마지막 도급받은 업체가 돈을 버는 방법은 공기단축밖에 없다. 산업안전 규정은 당연히 안 지키고, 무리한 작업을 시키는 탓에 사고성 재해 사망 절반이 건설 현장에서 나오게 됐다. 휴가나 휴일, 휴게시간, 하루 8시간 등 노동법도 안 지킨다.
이런 이유로 노조에서는 불법 하도급을 없애기 위해 노조가 고용 관련 단체교섭을 하고, 전문업체와 근로계약서를 명확히 쓰고 노동법을 준수하고,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에서 배제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노조 전임자 활동비는 왜 요구하게 됐나.
“법상 조합원이 99인 이하면 전임자에게 최소 연 2000시간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를 줘야 한다. 그러나 현장은 있다가 없어지고 노동자도 있다가 없어진다. 이 타임오프를 다 지키는 건 회사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장별로 월에 6공수(6일)의 임금을 전임자가 받는 등의 방식으로 중앙과 지역 임단협에서 합의했다. 각 현장에서는 이 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일반적인 회사의 교섭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경찰과 검찰과 법원 모두 일반적인 회사 교섭을 기준으로 사안을 판단해 불법으로 몰아가고 있다. 건설업계의 이런 특수성을 전혀 모른 채 일반적인 상시고용 기업의 노조 활동을 기준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공갈과 협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래 단체교섭 때는 노조도 사용자도 자기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압력을 가한다. ‘점잖고 신사적인 교섭’은 없다. 힘과 힘의 제도화된 대결이다. 사측도 매번 손해배상이나 노조원 징계, 형사고발 등 협박을 한다. 서로 압력을 가하고 그 과정에서 타협하는 게 교섭이다. 특히 노조의 압력 행사는 200년 전 유럽에서 노조가 태동했을 때부터 형사면책이 된 것이다. 집회 등 압력을 가했다는 이유로 형사법상 협박과 강요를 적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노조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지적했다며 협박이라는데, 산안법은 원래 사업자가 지켜야 할 법적 의무 아닌가.
만약 사측의 손배 협박 등으로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다고 해보자. (현재 정부의 관점대로라면)회사는 협박으로 재산상 이득을 본 거다. 그럼 사용자도 공갈 강요죄로 처벌하겠나? 그런 것들이 상호 간에 다 면책되는 것이 단체교섭이다.”
-수사기관이 범죄혐의를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인가.
“지금 증거로 제시된 것들이 모조리 업체 진술뿐이다. ‘원해서 (노조의 요구를) 들어준 게 아니다’라는 건데, 교섭에서 노조의 요구 조건을 원해서 들어주는 사측이 어디 있나. 하지만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건폭’ ‘갈취범’ 등으로 몰아가니 수사기관도 특진까지 내걸고 전국적으로 나섰다.
정부도 지난해 화물연대를 탄압했더니 지지율이 올라가는 경험을 한 뒤로 노조 때리기로 일관하고 있다. 민생, 외교, 경제 등 다른 데서 잘해서 지지율 올릴 능력과 비전(전망)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건설노조의 경우엔 강요 공갈 등 프레임을 짜서 때려잡기 쉬워 표적이 됐다고 본다.”
“천대받던 건설노동자…겨우 생긴 자긍심 꺾는 혐오살인”
노동계는 정부의 이 같은 ‘건폭 프레임’이 분신을 불렀다고 보고 있다. 양 지대장은 분신 전 남긴 쪽지에서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며 “내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건설노조는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건폭’ ‘공갈’ 등 모욕적인 표현으로 건설노조를 몰아간 것이 인권침해라며 지난 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의견 표명을 요청했다. 권 변호사가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분신해 숨진 양 지대장은 이런 프레이밍에 대해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어떻게 인식됐나. 이른바 ‘노가다’라며 천대했다. 정작 들어보면 고경험이 필요한 기능노동자들인데, 한 해에 수백명씩 죽고 고용도 불안정하고 불법 다단계하도급에 착취당한다.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산다. 그런데 노조가 만들어지고 휴게시간과 휴일이 지켜지고, 공기단축에 의한 무리하고 위험한 노동 강요에도 목소리를 내게 됐다. 노조가 여러 제도 개선도 이끌었다. 노동자들로서는 인간으로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자긍심이 생긴 거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건폭’ ‘갈취범’ ‘좀먹는 기생충’으로 매도당하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대통령부터 유력 정치인들까지 그렇게 얘기했다. 이건 혐오살인이다. 칼을 찔러서 죽이는 것만 아닐 뿐이다.”
-노정관계도 꼬일 대로 꼬여 있다.
“한국의 경우, 특히 이번 정부는 국가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의 노동3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200년 전 노조가 처음 생겼을 때 불법단체로 규정하던 시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건설노조를 잡기 위해 경찰, 검찰,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세무당국, 대통령실까지 온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일단 고용에 관한 교섭을 불법시하지 않아야 한다. 건설노조가 이런 요구를 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고, 건설산업의 초기업노조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교섭으로서 인정해줘야 한다. 불법하도급으로 중간착취를 하는 구조도 없애야 한다. 이는 정부가 5년마다 세우는 ‘건설산업 고용개선 기본계획’에 다 있는 내용이다. 정부가 해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대로 실천하면 되는데 하지 않고 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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