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광화문 책마당과 시위
주말이면 광화문광장에 별세상이 펼쳐진다. 수백 개의 형형색색 빈백이나 매트에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 독서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뉴요커들이 센트럴파크 잔디 위에서 오수를 즐기거나 책을 보는 평온하고 풍요로운 일상과 비슷한 그림이 서울 한복판에서 연출되니 신기하기도 하다. 관광객들에게도 색다른 볼거리다.
세계 책의 날이었던 지난달 23일 '광화문 책마당'이 처음 열렸는데 이틀간 2만2200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5000여 권의 최신간이 비치돼 있는 광화문 책마당을 찾은 누구나 자유롭게 그냥 보고 싶은 책을 꺼내 읽은 뒤 제자리에 꽂아놓고 나오면 된다. 이 같은 개가식 열린광장 도서관의 시작은 1년 전 서울시청 앞에 마련한 '책읽는 서울광장'이었다. 지난 한 해 46일간 운영했는데 일평균 5000여 명씩 총 22만명이 이용했다. 호응이 워낙 좋으니 올 들어 광화문광장으로 확대한 것이다. 쉼터이자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조성한 광화문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의미도 적지 않다. 예상치 못한 깜짝 성과도 있다. 주말마다 광화문 주변을 점령해 온 시위꾼들이 독서공간 앞에서 주뼛주뼛거린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이용객 대부분이 아이들을 동반한 학부모들이어서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함부로 침범해 과격시위를 할 수는 없지 않겠나. 법과 제도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폭력시위 문화를 광장 책읽기가 바꿔놓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게 바로 문화의 힘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시위 소음 자체는 여전하다고 한다. 최소한 독서 중인 아이들 근처에서만큼은 최대한 소음을 줄이는 노력을 해줬으면 한다. 시위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방해받지 않고 책 읽을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작년 책읽는 서울광장에서 미납된 도서는 단 69권으로 일평균 1.5권에 불과했다. 이처럼 높은 시민의식만큼이나 시위문화도 더 성숙해져야 한다. 어린이날까지 낀 이번주는 시위 대신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광화문 책마당에서 책읽기를 한번 해보는 건 어떤가.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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