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전發 위기의 본질과 직면할 때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지난 1년간 물가 급등을 막기 위해 공공요금과 전기요금을 관리해 왔다. 이제 그 부작용이 너무 커져 계속 동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 체제가 고비용 체제로 전환됐다. 태양광과 풍력 등 고비용 전원의 비중이 증가하고, 이들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스발전의 비중도 증가했다. 정부는 지난 5년간 주택용 전기요금은 거의 손대지 않고, 산업용 전기요금만 대폭 인상했다. 이로 인해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보다 더 비싸지는 초유의 상황까지 왔다. 제조업 중심 국가에서 이런 정책을 쓰는 사례는 전 세계에 없다.
탈원전 정책과 전기요금 동결의 부작용은 직접적으로 한전에 타격을 주었다. 2017년까지 영업이익을 내던 기업이 2018년부터 영업손실을 내기 시작했다. 2018년 2080억원, 2019년 1조2765억원이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2020년 영업손실은 면했으나, 2021년부터 다시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으로 2021년 한전은 2조9707억원의 매출손실을 냈으며, 영업손실 규모는 5조8465억원으로 증가했다. 유가 상승이 본격화한 2022년에는 매출손실 규모가 29조6457억원으로 커졌고, 영업손실은 32조6552억원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증가했다.
한전의 적자는 단순한 에너지 문제뿐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뇌관이 됐다. 2022년 3월 한전은 채권 발행에 실패했다. 채권시장에서 자금경색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채권시장에서는 천정부지로 늘어난 국채 및 한전과 가스공사가 발행한 채권으로 자금경색이 악화됐고, 결국 2022년 10월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 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안정화되던 통화증가율이 다시 급증했다. 지금도 한전채는 자금시장의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고물가 상황에서도 전기요금 동결로 2021년 대비 2022년 한전의 전기 매출 증가율은 17.7%로 급증했다. 고유가로 에너지를 절약해야 했지만, 전기요금 동결로 오히려 전기 소비가 증가한 것이다. 이로 인한 연료 수입 증가는 외환 수급에 악영향을 주면서 고환율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전의 최대주주는 32.9%의 지분을 가진 산업은행이고, 정부도 18.2%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결국 전기요금 동결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전기요금 동결로 인한 부작용은 물가의 급등락을 막고 국민의 안정적 소비생활을 도모하는 긍정적 효과를 훨씬 뛰어넘었다.
경영 효율화는 이미 할 만큼 했다. 2022년 직원 1인당 평균연봉과 최고 임원의 연봉은 2017년 대비 3.9%, 37.1% 삭감됐다. 경기 하락 국면에서 자산을 매각하는 것도 해법은 아니다.
전기요금 정상화가 불가피하다. 산업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의 에너지 사용 효율화를 위해, 원가에 기반한 가격 체계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재원으로 5조원 가까이 쌓인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학교를 세우고,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특별하다. 어려울 때 하나가 돼 위기를 극복했다. 정부가 국민과 진실하게 소통하고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우리는 한전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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