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알고서 한국 은행산업에 손대는 것인가? [자본시장 이야기]
은행은 예금으로 확보한 돈을 대출해주며 수익을 내는 기관이다. 예금에 내어주는 이자와 대출로 취득하는 이자율의 차이는 은행의 기본적인 수익의 원천이 된다. 대개 예금은 단기로 예치되지만 대출은 장기로 이루어진다. 보통의 경우 장기이자율이 단기이자율보다 높으므로 이러한 은행의 ‘만기 전환(단기로 빌려 장기로 대출하면서 이익을 취하는 구조)’ 기능이 수익을 낳는다. 이렇게 예금은 은행 수익의 기본이 된다.
예금은 예금주가 언제든지 인출을 요구할 수 있다. 언제든 돌려주어야 하니 은행에게는 부채다. 인출 요구가 있으면 은행은 갖고 있는 현금을 내준다. 만약 보유한 현금이 부족하다면 대출을 회수해서라도 요구에 응해야 한다. 그러니 은행은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는 일이 중요하고, 예금 인출 요구에 맞추어 회수할 수 있도록 대출의 만기도 조정해두어야 한다.
■ 예금보험이 시스템 위기를 키우기도
은행이 예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으면 보다 장기적인, 따라서 수익이 더 높은 대출을 할 수 있다. 또 인출 요구에 대비해 평소에 현금을 얼마나 갖고 있어야 하는지 가늠하기 쉬워지며 대출 규모와 만기를 조정하는 데도 유리하다. 반면 예금이 들쑥날쑥하다면 현금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높은 수준으로 준비해두어야 한다. 대출 역시 회수가 쉽도록 단기로 제한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은행의 현금 보유는 공짜가 아니다. 현금으로 다른 뭔가에 투자했다면 어느 정도 벌었을 텐데, 들고만 있었으니 그만큼 손해를 본 셈이 된다(기회비용 발생). 또 단기 대출은 장기 대출보다 대개 이자 수입이 적다. 따라서 현금을 많이 보유하거나 단기로 대출하면 은행 수익성이 떨어진다. 예금이 불안정하면 그렇게 된다.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예금은 인출 요구가 한꺼번에 몰리는 ‘런(run)’으로 나타난다. 런은 어떤 은행도 한꺼번에 모두에게 모든 예금을 지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금자 처지에선 남들이 예금을 먼저 찾아갈 경우 은행에 남은 게 없어 ‘내’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남들보다 빨리 내 돈을 인출해야 한다. 모든 예금자가 이렇게 생각하면, 좀 더 정확히는 ‘생각하기만 해도’ 결국 런이 일어나게 된다. 런은 은행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이다.
그러니 런을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금보험제도(Deposit Insurance)가 생긴 이유다. 은행이 망해도 어느 한도까지는 예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제도다. 그래서 미국에선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에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생겼다. 예금보험이 있으니 굳이 내 돈을 남들보다 먼저 찾으려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런 가능성이 줄어드니 예금은 보다 안정적이 되고, 그에 따라 은행의 만기 전환 기능이 잘 작동할 수 있다. 기업들은 안정적인 장기 대출을 받아 투자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실물경제도 좋아진다. 한 문장으로는 이렇게 쓸 수 있겠다. ‘예금보험은 은행의 유동성 위험(런으로 인해 보유한 현금이 고갈될 위험)을 줄여 시스템 위기(금융위기와 실물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줄여준다.’
그러나 경제학 실증연구들은 대체로 예금보험의 존재로 인해 시스템 위기가 오히려 더 커졌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 연구는 1980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61개국의 예금보험을 조사했는데, 예금보험이 경제적 동기보다 특정 집단에 혜택을 주기 위한 정치적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결과를 보여준다. 예금보험이 은행의 위기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가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예금보험제도하에서 더 심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점의 한가운데에 ‘도덕적 해이’가 있다. 은행이 보험 덕분에 적은 이자로 예금을 유치해서 높은 위험의 대출에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예금보험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증거는 많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는 예금보험 도입이 주(州)마다 시차를 두고 이루어졌다. 한 실증연구는 이 점을 활용해 당시의 예금보험 도입 전후로 ‘보험이 적용된 주의 은행’과 ‘비적용 주의 은행’ 사이에 도덕적 해이의 차이가 있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보험 적용 주의 은행’이 훨씬 큰 도덕적 해이에 젖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 ‘자산 대비 현금비율’ 등을 법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수준으로만 유지했다. 반면 전쟁 와중에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언제 버블이 꺼질지 모르는 상태였는데도 농가에 대한 대출, 즉 위험한 대출을 대폭 늘리고 있었다. 그 결과, 보험 적용 은행들의 파산위험(insolvency risk)은 비적용 은행들보다 유의하게 컸다.
■ 그래도 예금보험이 필요한 이유
실증적으로 문제점이 증명되었는데도 예금보험이 유지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최근 실리콘밸리 은행(SVB)의 부도 사태를 보면, 미국의 은행들에 대해 규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SVB의 전체 예치금 가운데 FDIC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비율이 무려 96%에 달했다. 예금보험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예금보험은 예금자의 예치금 전액이 아니라 일부만 보장해준다. 보장받는 부분을 ‘부보 예금’, 보장받지 못하는 부분을 ‘비부보 예금’이라고 부른다). 이 사태를 보면, 그래도 예금보험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편이 없애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결국 도덕적 해이를 줄여야 한다. 도덕적 해이란 ‘정보 불균형(은행이 아는 자행의 경영 상태를 예금자는 모른다)’에서 나온다. 은행의 투명성을 높여 정보 불균형을 줄이면(은행이 아는 것을 예금자도 안다), 도덕적 해이도 줄일 수 있을 터이다. 경제학에서는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대개 바람직한 행위로 본다. 그런데 은행의 경우엔 꼭 그렇지도 않다. 예를 들어 은행의 좋지 않은 성과나 높은 위험성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모두에게 공개되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부보 예금은 바로 인출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투명성을 높인 덕분에 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은행들은 예금을 묶어두기 위해 예금이자를 대폭 올려야 한다. 예금을 확보하기 힘드니 대출도 줄일 것이다. 이는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은행들이 정보공개를 꺼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투명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보 예금이라면 은행의 문제점이 투명하게 공개되더라도 굳이 예금을 뺄 필요가 없다. 더구나 예금 인출을 방지하기 위해 은행이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하니 더욱 좋다. 그러니 은행들에게 투명한 경쟁을 요구하려면 먼저 예금보험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예금보험이 은행의 경영 성과에 대한 예금 인출의 민감도를 줄여 예금의 안정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 은행 규모는 여전히 중요하다
안정적인 예금 확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예금보험제도의 정비만이 아니다. 예금주들의 캐릭터도 중요하다. 예금보험이 없는 상황인데, 은행에 무슨 사태가 발생한다고 치자. 은행 내부자들 및 은행에 예금과 대출을 함께 가진 예금주(예금을 뜯기는 것은 물론 대출까지 만기 이전에 회수당할 가능성이 크다)들은 누구보다 먼저 예금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은행과 오랫동안 관계를 쌓아온 예금주들은 쉽사리 예금을 인출하려 하지 않는다. 실증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다.
또한 ‘주식투자자 예금주’들은 ‘주식에 투자하지 않는 예금주’들에 비해 예금을 인출할 가능성이 크다. 주식 투자를 많이 하는 지역에서는 주가가 높을 때 예금이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다. 예금주들이 주식 투자를 통해 더 높은 수익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SVB 사태는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교훈을 준다. 1985년에 설립된 SVB는 벤처캐피털리스트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형 은행이다. 돈 잘 버는 기업들이 고객으로 SVB에 돈을 맡겼는데 예금보험으로 보장하는 예금은 25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 은행에 예치된 예금 중 비부보 예금이 대부분이었던 이유다. 문제는, 고객인 벤처기업들이 경제 상황이나 은행의 경영 상태에 몹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SVB는 장기 국채에 투자해 보유하고 있었는데, 금리 상승으로 인해 손실(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이 쌓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자 고객 기업들은 주저 없이 예금을 인출했다. 이렇게 되어, 40년 역사의 은행이 40여 시간 만에 망했다.
SVB로서는 억울할 만했다. 예금을 서브프라임 같은 위험한 대출(2008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었다)이 아니라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투자했는데 이런 사달이 났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번 SVB 사태는, 은행이 예금을 아무리 안전하게 관리하더라도 런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런이 무서운 것은 은행의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안전자산이라는 말은 ‘(그 증권 자체에) 부도 위험이 없다’는 뜻이지 ‘런과 상관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SVB 사태가 벌어지자 투자자들은 일본 은행들 또한 채권에서 입은 손실로 인해 런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해외 투자자가 바로 일본 은행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SVB와 달리 일본 은행들의 펀딩은 다양한 특성의 예금들에 기초해 잘 분산되어 있었다. 걱정했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SVB 같은 ‘중형’ 은행에서 부도 사태가 터져 금융 불안이 확산되면서 예금을 대형 은행으로 옮기는 일이 가속화되고 있다. SVB 사태부터 3월 말까지 약 2주 동안 미국의 상위 25개 대형 은행으로 1200억 달러가 흘러 들어갔다. 그 밖의 (작은) 은행들에서는 1080억 달러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소형 은행의 주간 단위 예금 인출로 역사상 신기록이라고 한다. 같은 기간 높은 수익률을 좇아 ‘머니마켓뮤추얼펀드(MMF:주로 단기간 국채에 투자하는 펀드)’로 흘러 들어간 금액도 무려 2200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MMF에 투자한 금액은 보험을 통해 보호받을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금융산업에서 은행의 ‘규모’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물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해 대형 은행들을 규제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규제의 바깥에 있던 다른 중소형 은행들보다 대형 은행이 더 안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 은행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미국에서 은행의 위험한 대출에 대한 우려는 예금보험이 생긴 지 몇십 년이나 지난 1980년대에야 불거졌다. 어떤 이유일까?
1980년대 이전엔 은행을 설립하기 매우 어려웠다. 은행 설립 인가, 지점 설립, 다른 주(州)로의 은행 확장 등에 관한 반경쟁적(anti-competitive) 규제들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은행업으로 들어가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았고, 금융시장에 대한 은행의 지배력도 강력했다. 이에 따라 면허 가치(Charter Value, 은행을 설립하려면 국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등 은행의 영업 가치(Franchise Value)가 크게 높아졌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예금보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에서 추구하는 위험의 수준을 적절히 조절하려 했다. 위험을 추구하다 은행 인가(면허)를 잃게 되면, 영업 가치(면허 가치 등)가 큰 만큼 손해도 막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커다란 영업 가치가 예금보험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로 기능했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가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은행의 영업 가치가 하락했다. 그에 따라 은행들의 위험 추구 성향도 증가했고, 결국 도덕적 해이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은행이 높은 영업 가치를 갖고 있으면 여러모로 유리하다. 아무래도 예금을 유치하기가 쉽고, 예금이 몰리면 낮아진 예금 금리 덕분에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 장기 대출도 늘릴 수 있다. 영업 가치는 대형 은행일수록 크다.
■ 은행 과점 타파?
이 같은 사실은 현재 한국에서 ‘대형 은행 과점’ 체제를 타파하자는 논의에도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거치며 자리잡은 게 현재의 대형 은행 과점 체제다. 난립하던 은행들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정리한 결과다. 정부는 이 은행 과점 체제를 수술하기 위해 대대적인 작업에 막 돌입하려는 참이다.
구제할 필요가 없는 작은 은행은 이제 없다. 작은 은행도 시스템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최근의 SVB 사태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은행들은 대형 은행들보다 더 취약하다. 그렇다면 왜 굳이 다른 나라들이 은행 위기를 걱정하는 지금, 잘 버티고 있는 한국의 은행산업에 손을 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국회의원 선거를 1년여 남기고 지긋지긋한 포퓰리즘이 또다시 못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안 하는 편이 가장 낫지만 말려도 안 들을 테니 이왕 실행할 것이라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완장을 채워주고 정책을 남발하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그동안 충분히 보아왔으니 말이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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