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4일 지방선거에서 사상 첫 유권자 신분증 확인 의무화…투표 영향은?

정원식 기자 2023. 5. 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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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현지시간) 키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잉글랜드 켄트주 질링엄에서 지지자들과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실시되는 영국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초로 유권자들에게 사진이 포함된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투표율이 하락하고 야당에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런던,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230개 지방의회에서 의원 8000여명을 뽑는다. 베드퍼드, 레스터, 맨스필드, 미들즈브러 등에서는 시장 선거도 함께 치러진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찰스 3세 대관식 등을 이유로 선거일이 오는 18일로 연기됐다.

그동안 영국 유권자들은 투표 당일 투표소에서 이름과 주소만 대면 투표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1년 발의된 집권 보수당의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통과되면서 이번 선거부터는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등 사진이 포함된 신분증을 지참해야 투표할 수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지난 3일 의회에서 “(투표시 신분증 확인은) 유럽에서 일반적이고 캐나다에서도 일반적”이라면서 “이를 영국에서도 도입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러나 이 같은 변화가 전반적인 투표율을 떨어뜨리고 청년 및 사회적 약자들의 투표 참여를 좌절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비정부기구인 영국 선거개혁협회는 유효한 신분증이 없는 영국 유권자들이 약 2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정부는 유효한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신분증을 발급해주고 있지만 독립 미디어 플랫폼 오픈데모크라시에 따르면 신청자는 200만명 중 4.3%에 해당하는 8만5689명에 불과하다.

투표 당일에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투표장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유권자들도 있을 수 있다. 영국인의 약 20%는 평소에 신분증을 휴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분증 관련 규정이 보수당에 유리하게 짜여져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영국 정부는 운전면허증이나 여권이 없는 경우 고령자 버스 패스나 고령자 무임승차 카드는 대체 신분증으로 허용하면서도 학생증이나 청년들의 철도카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고령층 가운데 보수당 지지자들이 많고 야당인 노동당이나 자유민주당 지지층에는 상대적으로 청년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편향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자유민주당 대표 에드 데이비 의원은 지난 2일 ITV <굿모닝 브리튼>에 출연해 “정부가 민주주의를 망치려 한다”고 비판했다. 보수당 데이비드 데이비스 의원도 지난달 28일 트위터를 통해 투표율이 떨어질 것이라며 “우리 민주주의에 해롭다”고 말했다.

투표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클라이브 루이스 노동당 의원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은 투표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하원위원회는 2021년 12월 보고서에서 “신분증 확인 의무가 특정 사회 집단, 장애인,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 흑인 및 소수 민족, 고령자 등 보호 대상인 일부 계층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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